거기에는 2대에 걸친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간의 ‘아름다운 인연’이 숨어 있다.
김 부회장은 김상하(金相廈) 삼양그룹 회장의 조카. 또 우석형(禹石亨) 신도리코 사장은 올해 3월 작고한 우상기(禹相琦) 회장의 장남이다.
80년대 내내 대한상공회의소의 부회장과 회장을 맡았던 김 회장에게 우 회장은 ‘의리 있는 사나이’였다.
80년대 대한상의는 새로 급성장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회원사들을 많이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나 우 회장은 “상의를 버리고 갈 수 있느냐”며 끝까지 상의 회원사로 남는 ‘지조’를 보여주었다. 지금도 신도리코는 상의 회원사이다.
우 회장이 보여준 의리는 김 회장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두 사람은 남다른 친분을 맺게 됐다. 김 회장이 우 회장 작고 후 호상(護喪)을 맡고 추도사에서 절절한 심정을 토로한 이면에는 이런 ‘20년 우정’이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대를 넘겨 김 부회장과 우 사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 사장은 김 부회장에게 사외이사를 맡긴 것은 물론 서로 자주 만나 경영상의 조언도 구한다.
재계 경영자들간에는 갖가지 인연과 기연이 많다. 신도리코와 삼양처럼 2대에 걸친 선연(善緣)도 있고 악연(惡緣)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영자간의 인연 때문에 때로는 기업간 관계에서 ‘울고 웃는’ 일도 벌어진다.
▽대한항공에서 롯데 제품이 사라졌던 이유〓90년대 초 한때 대한항공 비행기에선 롯데 제품이 갑자기 사라졌다.
사탕이나 햄 등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롯데 제품이 추방된 데는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됐다.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직후 롯데호텔에서 대한항공 사장단이 모인 자리에서 롯데 그룹의 한 경영자가 “대한항공에도 항공기 사고가 많다”고 무심코 한마디한 게 당시 조중훈(趙重勳) 한진그룹 회장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 것.
격노한 조 회장은 “앞으로 ‘롯데자(字)’가 들어간 제품은 우리 비행기 안에 들여놓지 마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얼마 뒤 화해가 이뤄져 롯데 제품이 다시 대한항공 기내로 ‘진입’하긴 했지만 말 한마디 실수한 것치고는 톡톡히 대가를 치른 셈이다.
▽정주영(鄭周永)-김우중(金宇中)의 반목〓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와 김우중 전 대우 회장간의 반목은 재계에서 널리 알려졌던 일.
맨주먹으로 창업해 기업그룹을 일군 정주영 회장은 인수와 합병으로 성장한 김 회장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건 1980년 5월. 현대가 신군부의 압력으로 현대양행을 내놓는 과정에서였다. “군부의 강압으로 자동차를 살리는 대신 중공업은 포기해야 했는데 그렇게 빼앗긴 중공업을 김 회장이 가져갔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었다.
김 회장이 98년부터 전경련 회장으로 있던 때에도 정 회장은 김 회장을 재계의 리더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김 회장이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으로 정 회장을 찾아가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오랜 앙금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정 회장과 고 이병철(李秉喆) 삼성 창업주간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해프닝 하나는 정 회장의 다혈질 기질을 보여주는 일화. 두 사람은 같은 재계 1세대로서 골프를 함께 치는 등 우정을 나누기도 했지만 크게 감정이 상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정 회장은 서울 한남동 이병철 회장 집 앞으로 가 대문에 대고 큰 소리로 한바탕 화풀이를 했다고 한다.
▽손병두(孫炳斗) 부회장의 ‘범(汎)재계’ 인연〓손병두 전경련 상임부회장은 현재 4대 그룹 최고경영자들과 두루 인연이 얽혀 있다.
손 부회장은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 회장과는 경복고 동기. 손 부회장은 지금도 그 시절을 얘기할 때면 “정 회장이 주먹이 세 힘이 약한 나를 보호해줬다”고 하곤 한다.
손 부회장과 손길승(孫吉丞) SK 회장과는 진주중 동기생으로 전경련 모임에서 만나면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다.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과는 이 회장이 ‘후계 수업’을 받고 있을 때 손 부회장이 삼성그룹 비서실에 근무해 만나게 됐다.
구본무(具本茂) LG 회장과는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구 회장의 부친인 구자경(具滋暻) 명예회장이 손 부회장의 모교인 진주중에서 잠깐 교사를 했던 인연이 있다.
이인호(李仁浩) LG애드 사장과 신한은행 이인호(李仁鎬) 행장은 한글 이름이 같아 혼동되는 대표적인 경영자.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연세대 동문이며 ROTC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에 이름까지 같고 경제계에서 함께 일한다는 ‘연대감’ 때문인지 지금도 자주 만나거나 전화를 주고받는다.
이명재기자 mjlee@domga.com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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