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때 그이야기]제11회 아르헨티나<상>

  • 입력 2002년 5월 3일 18시 48분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캠페스가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게티이미지]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캠페스가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게티이미지]
1978년 제11회 아르헨티나월드컵은 예선 참가국이 역대 최다인 106개국으로 늘어나며 월드컵의 규모가 처음으로 유엔 회원국 수를 앞지른 ‘뜻깊은’ 대회였다.

이 때문에 대회를 앞두고 본선 참가국을 24개국으로 늘리자는 논의가 활발했으나 종전처럼 16개국으로 제한한 채 대회를 치르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월드컵 그때 그얘기' 연재기사 보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군사정부가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며 월드컵을 치러낸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우승컵이었다. 솟구치는 국민들의 불만을 월드컵 우승으로 무마시키자는 의도였다.

목적이 명확했던 만큼 아르헨티나는 1회전부터 노골적인 심판매수에 나섰고 편파판정을 앞세워 헝가리와 프랑스를 연파하며 가볍게 8강이 겨루는 2회전에 진출했다.

8강 조편성에서도 아르헨티나의 불공정행위는 이어졌다. 8강 진출국중 직전 대회 우승, 준우승국인 독일과 네덜란드,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같은 조(A조)에 편성시키는 재주를 부린 것.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강팀끼리 짜여진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10회 월드컵대회에서 준우승의 불운을 감수했던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리그전으로 치러진 준준결승에서 첫 상대인 독일과 2-2 무승부를 기록한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각각 5-1,2-1로 꺾으며 A조 1위로 2개 대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 당연히 아르헨티나.

결승전이 치러진 곳은 7만7260명이 운집한 부에노스아이레스구장. 대부분의 관광서까지 업무를 중단하는등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채 열린 결승전은 초반부터 반칙이 난무했다. 그러나 심판의 휘슬은 한쪽으로만 치우쳤고 전반 38분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캠페스가 마침내 첫 골을 뽑았다. 이후 수세에 몰리기만 하던 네덜란드도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고 후반 36분 푸르트블리에트가 동점골을 뽑아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네덜랜드가 전후반 90분동안 받은 파울만 무려 50개였다.

연장전 휘슬이 울리자 양 팀 선수들은 지칠대로 지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유독 한명만이 그라운드를 휘젖고 있었다. 바로 등번호 10번을 단 캠페스였다. 첫골의 주인공이기도한 캠페스는 연장 14분 단독 드리블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아르헨티나는 이어 베르토니의 추가골이 터져 결국 3-1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캠페스는 6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이후 등번호 10번은 아르헨티나 최고 축구 스타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캠페스 은퇴 이후 10번을 물려받은 선수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는 모두 38경기에서 102골(경기당 평균 2.68골)이 터졌고 평균 4만2374명의 관중(연인원 161만215명)이 경기를 관람했다. 개최국이 우승한 역대 5번째 대회였고 세계 축구의 양대 세력이었던 남미와 유럽간의 대결에서 남미가 6대5로 우세를 지킨 대회이기도 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