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는 ‘미래’로 진보(進步)하기보다는 ‘과거’를 보수(保守)하자는 다짐을 되새기는 듯한 결정을 선고했다. 이른바 사상범을 형기 만료 이전에 가석방하는 조건으로 ‘준법서약서’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왠지 1950년대 ‘국민학교’ 조회시간에 앞서 전교생이 입모아 내 걸던 비장한 ‘우리의 맹세’가 연상된다. “우리는 대한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양심의 자유 침해 않는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세상이 바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게 외국 법률가들의 평이다. 오래 전 올림픽을 치렀고, 월드컵을 코앞에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의 최고 헌법보장기관에 걸맞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분단국 사정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한가한 잠꼬대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경제적 수준도 웬만한 나라인데 인권보장의 보루인 헌법재판기관의 결정조차 여전히 인권후진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가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이 사상의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사상의 자유는 너무나도 자명한 자유민주주의 헌정의 기본요소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격동의 현대사에서 ‘사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불온과 피의 냄새 때문에 내놓고 헌법전(憲法典)에 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서 사상의 자유는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법원과 헌법학계의 일치된 해석이다.
사상이라는 양심은 국가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남과 다른 철학, 종교를 가질 수 있듯이 다른 이데올로기도 신봉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다수의 기준에서 볼 때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을지라도 당사자 자신이 진지하게 믿는 이상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중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탄압해서는 결코 안 된다.
법과 제도 속에는 다수자의 윤리와 가치관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현재 다수자의 윤리와 가치관이 항상 지배적 지위를 갖는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과거 다수자의 이데올로기에 배치되는 소수자의 머릿속에서 잉태되었던 것일 수 있고, 또 미래에 다시 한번 소수파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수자의 것인 법과 제도가 소수자의 사상을 억압해서 안 되는 이유가 이처럼 사상의 세계에는 절대적으로 우위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준법서약서는 과거 시행하던 ‘사상전향서’의 직계자손이다. 사상전향서는 국가보안법이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지탄을 받는 유례가 드문 악법으로 낙인찍히는 데 기여한 제도였다. 준법서약서는 전향서와 다르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단순히 ‘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무슨 문제냐고 재판관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고 성형수술을 한다고 실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가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당연한 서약서라면 왜 모든 범법자에게 요구하지 않는가.
▼시대 내다보는 안목 아쉬워▼
백 번 양보해 준법서약서가 과거의 전향서와 본질적으로 다르고, 그래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는 악법이 아니라고 치자.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제도임은 분명하다. 남북한이 엇비슷하게 체제경쟁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우리의 제도가 북쪽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더 이상 증거가 필요 없는 공지의 사실이다. 그 비교우위의 핵심이 이 땅에는 다른 사상에 대한 관용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핵심에 의문표를 달 정도로 대한민국이 여유 없는 사회인가.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의 소신과 철학에 경의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과 최소한 현실을 바로 파악하는 예지가 아쉽다. 불행 중 다행은 두 사람의 재판관이 정교한 논리를 바탕으로 반대의견을 썼다는 사실이다. 소수의견이 후일 다수의견으로 승격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의 발전이라 부른다. 진보하는 역사에 필요한 안목과 식견이 배태되고 있기에 아직도 우리는 헌법재판소에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안경환 서울대 교수·한국헌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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