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채미옥/농지규제 완화 국토차원서 생각하자

  • 입력 2002년 5월 6일 18시 20분


최근의 쌀 재고 누적과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출범으로 국내 농산물 및 농지 가격이 하락하고 농가경제는 더욱 침체되고 있다. 그 해법으로 농지에 대한 규제를 풀어 부족한 도시용지로 사용하고, 농촌의 활력을 증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농지 중의 상당부분을 도시용지로 공급할 때, 농지 가격이 상승하고 어려운 농가경제의 주름살을 펴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농지 관련 문제의 상당부분은 농지관리제도와 농정대책을 혼동하는 데에 있다. 쌀 재고 누적과 농산물 가격 하락 등은 농업부문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농업정책과 농가 경제대책의 문제다. 농촌 활성화를 위해 실시한 농업진흥지역 내의 용도규제 완화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농업환경 악화라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 농업진흥지역 내 용도규제 완화는 일정 요건을 갖춘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토 중에서 도시용지로 이용되는 면적은 5.3%인 약 5300㎢이다.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했던 1970년도부터 2000년까지 전용된 총 농지면적은 약 3800㎢ 정도에 불과했다. 과거와 같은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워 앞으로의 도시용지 수요는 최고로 높게 추정하더라도 5000㎢ 정도를 넘지 못할 것이다. 반면 기존의 구릉지와 농업진흥지역 외의 농지 중 개발가능지로 공급될 수 있는 면적은 약 1만7000㎢가 넘는다.

농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농지전용 수요는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권 주변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날 것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농지가격 상승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규제 완화의 수혜자는 피폐된 농촌지역의 농민이 아니라, 이미 상대적으로 땅값이 높게 오른 농지를 소유한 도시 거주자가 될 것이다.

2000년 현재 우리나라의 농지면적은 1만8890㎢이다. 이 중에서 농지로서 보전 가능성이 높은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는 전체 농지의 56%인 약 1만630㎢이다. 나머지 44%의 농지는 비교적 쉽게 도시용지로 전용할 수 있는 관리지역(준농림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농지 중에서 개발 적성이 높은 농지는 규제를 완화해 도시용지로 전용을 촉진하되, 그 나머지는 보전 대상 농지에 포함시켜 토지 이용의 효율화와 농지의 난개발을 방지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농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는 농업정책과 농지관리제도를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농업정책 차원이 아니라 국토관리 차원에서 농지를 관리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채미옥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