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탈당은 책임모면用▼
원래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를 말한다. 어떤 정당이 집권할 경우 선거과정에서의 약속을 집권기간 중에 열심히 구현하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재집권 여부를 결정짓자는 것이 책임정치의 논리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도 대통령 자연인 한 사람의 선출과정이라기보다는 그를 상징적 대리인으로 삼는 일단의 정치적 결사체에 대한 선택작업이라고 보아야 제격이다.
따라서 국민의 참정권을 집권당과 공동 수임했다고 해야 할 대통령이 집권당과 결별하는 경우 유권자들로서는 합당한 평가와 책임 추궁의 대상을 잃게 된다. 이 점은 특히 단임제 대통령의 경우보다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책임정치의 구현이 원초적으로 차단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이 집권당을 떠나는 일이 하나의 관행처럼 자리잡게 되었어도 이를 문제삼거나 정치적으로 반발하는 이가 집권당 내부에 없다. 우리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에서는 정당을 책임정치 구현의 통로는커녕 정치적 책임의 모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마저 엿보인다. 말로는 모두가 대통령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집권당을 떠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부패나 실정으로 야기된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해 탈당해 왔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집권당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에 대한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는 특히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이 국정운영상의 중립성 유지와 객관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에서 더 확연해진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지금까지의 정치적 부패나 불공정은 모두가 집권당과의 연계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실정의 책임이 대통령이 아닌 집권당에 있다는 암시다. 자기책임 회피의 극치다.
중립적 국정운영을 위해 정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또 정당정치를 패거리 놀음 정도로만 이해할 뿐, 국민의 정치적 요구나 선호를 국정운영에 반영하기 위한 장치라는 인식은 결여되어 있다. 아니 정당과 격리될 때 좀더 합리적인 대안의 모색이 가능하다는 사고야말로 선민의식의 발로이며 독단과 아집의 출발점이다. 심지어 야당의 감시와 견제로부터 벗어나려는 발상과 의도마저 감지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요구에 조응하려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책임정치로부터의 외면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에서는 대통령 자신에 대한 책임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대통령의 아들을 비롯한 친인척의 부패와 의혹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해 있고, 그것이 집권당을 탈당해야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면 당연히 대통령 자신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사과하고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했어야 옳다. 적어도 대통령 자신의 윤리적 도덕률에 대한 자기책임 추궁이 부족했던 것이다.
▼失政 누구를 추궁하나▼
그런데 이런 무책임과 비윤리가 다른 때도 아닌 민주화 이행기의 특징처럼 자리잡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위주의 통치체제의 제거가 정치적 대리인으로 하여금 국민에 순응하고 복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의 방만한 자율권 확대에만 기여했기 때문은 아닐까.
세 분 모두 헌정사상 초유인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제도상으로는 단임제가 정치적 무책임을 재촉하는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국민의 통제와 감시가 아직은 취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로의 이행에서 왕도는 따로 없는 모양이다. 오로지 깨어 있는 국민만이 국민다운 대접을 약속받는다는 민주주의의 금언 일조를 다시 한번 새겨 보아야 하겠다.
박재창 숙명여대·의회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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