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펴낸 김기홍씨

  • 입력 2002년 5월 10일 17시 22분


“우리는 왜 빼앗기기만 하는가.”

1992년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의 쌀 시장 개방, 올해 미국 자동차회사인 GM에 헐값에 팔린 대우자동차 그리고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굿인포메이션)의 저자 김기홍씨(45·산업연구원 연구위원)는 그 원인을 ‘협상 능력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외국과 협상에 앞서 내부 입장 조율 과정이 문제다. 외국 협상가들에게 개방의 폭을 줄일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한 준비가 미흡했다. 의약분업, 주5일제 근무 등 국내 사회의 갈등 역시 내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

그는 현 정부의 협상 능력이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보다 나아졌지만 아직도 ‘구색 맞추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의 압력이 들어왔을 때 찬성하는 쪽은 물론 반대쪽의 시위 등을 협상에 제시해 합의점을 찾는 등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 외국과 협상할 때 각계 대표들과 함께 참석해 조언을 구하는 미국처럼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전략을 세워야 협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응용 게임이론(개인 집단의 행동기준을 분석하는 것)과 전자상거래로 정보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협상 전문가. 고려대 서강대 등에서 국제통상협상 강의를 하면서 ‘협상 문화가 전무한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 게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우리는 왜…’를 내게 됐다.

협상 전에 향수를 뿌리고 가글을 한다는 ‘테크닉’을 소개한 적은 있지만 협상을 위해 근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수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다룬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는 협상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상호의존성’,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는 ‘합리성’, 편견과 왜곡을 버리는 ‘상황’ 등 3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제일은행, 하이닉스 반도체 등이 헐값에 외국 기업에 넘어가거나 넘어갈 처지에 놓인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다. 협상은 나 자신이 출발점이다. 훌륭한 협상가는 외국어 등 경쟁력을 키우고 신뢰성을 키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멋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집단의 견해 차이의 경우 사건 해결을 위한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학연 지연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원래 사학도(서울대 국사학과)였던 그는 1981년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돕자’는 생각에서 국제통상협상 공부를 시작했다. 협상은 ‘관계(Relation)’이며 협상가는 내부의 의견을 수렴해 외부 협상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한일 무역자유협상이 경제적으로 필요하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도체가 1위라고 하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를 일본에서 수입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워크숍을 통해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민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씨에게 협상을 공부했으니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설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평론가와 소설가가 다른 것처럼 협상전문가도 협상을 연구하고 분석할 뿐”이라고 했다.

한국협상학회 이사이기도 한 그는 10월경 협상 트레이닝 과정을 개설해 일반인들에게 개인 혹은 집단 협상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외국과 한국의 협상 사례들을 요목조목 분석한 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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