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20>캐나다 벤쿠버 스탠리 파크

  • 입력 2002년 5월 10일 17시 22분


도심 속의 밀림으로 불리는 캐나다 밴쿠버의 스탠리 파크
도심 속의 밀림으로 불리는 캐나다 밴쿠버의 스탠리 파크

북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공원이자 캐나다 밴쿠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스탠리 파크(Stanley Park). 관광마차가 다니고 시민들이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면 분명 공원이지만 산책로를 조금 벗어나 안쪽 숲지대의 샛길로 들어서면 그곳은 엄연한 산이다. 산이 아니라 아예 밀림이다. 이곳 나무의 평균 수령은 100∼150년, 평균 높이는 20∼30m. 산길 곳곳엔 부러진 나무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부러진 나무에선 또다시 새순이 돋는다. 한국의 천연기념물처럼 보존되고 있는 수령 1000년의 시더(ceder·측백나무의 일종)도 있다.

스탠리 파크는 밴쿠버 도심 한복판에 있다. 도시에 있는 산이나 숲 중에선 지구 최대의 원시림으로 꼽힌다. 도심 속 밀림인 셈이다. 스탠리 파크를 비롯해 밴쿠버 일대의 산과 숲을 지켜내는 것은 시민의 힘이다. 작게는 스탠리파크 보존 기금을 내는 것부터 크게는 적극적인 산림 법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산과 사람' 연재기사 보기

캐나다는 나무만 팔아도 200년을 먹고 살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나무의 보고다. 밴쿠버가 속한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특히 더하다. 이곳에선 세계 침엽수 제재목의 9%가, 세계 침엽수 제재목 수출량의 35%가 생산된다. 또한 연간 벌목 목재량은 7000만㎥로, 한국의 연간 목재 사용량 2000만㎥를 3배나 능가한다. 그러나 천혜의 자연조건만 믿고 방심해온 이곳에도 1990년대 들어 비상이 걸렸다. 벌목이 너무 과도하다는 반성이었고 대책 마련에 시민들이 적극 나섰다.

스탠리 파크의 경우, 시민들의 자발적인 스탠리 파크 보존 운동이 두드러진다. 1992년 발족한 시민단체 ‘스탠리파크 환경사회(Stanley Park Ecology Society)’가 대표적인 예. 스탠리 파크의 환경을 보존하고 그 중요성을 일깨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실천하고 있다.이 단체는 기본적으로 왜 나무를 지켜야하는지에 대해 교육하지만 단순히 나무나 산림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자로 교육을 담당하는 로리 모리슨은 “공원에서 야영하기, 야생동물 견학 등을 통해 나무 숲 나아가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도록 한다. 도시민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산과 숲을 단순히 보존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인간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체의 모토는 ‘자연을 지킨다’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킨다’이다. 이곳을 찾은 밴쿠버시민 버나비 린은 “스탠리파크 숲에 들어가면 내가 그대로 숲이 되는 것 같아 숲을 내 몸처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고 자랑했다. 또한 어린이 교육에 중점을 두는 등 전체적으로 장기적인 산림 보호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스탠리 파크를 지키기위한 시민들의 기부 문화도 주목할 만하다. 스탠리 파크 곳곳의 벤치엔‘리오넬 스파다(1944∼1995), 스탠리 파크를 위해 기부하다’와 같은 식의 명패들이 붙어있다. 스탠리파크의 나무와 숲을 위해 기부금을 내놓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명패다. 이것은 스탠리파크를 지켜내는 힘이 시민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작지만 중요한 예다.

하이킹‥ 야영‥ 시민의 쉼터
자전거를 타고 스탠리 파크 순환도로를 돌고 있는 밴쿠버 시민들. 이들은 이곳에서 야영도 하고 동물도 견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숲과 일체감을 느낀다

시민 단체의 움직임은 좀더 적극적이어서 최근엔 산림인증(Eco labeling)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선 마구잡이 벌목에 반대하는 시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 단체들은 시위만으로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방향을 바꾸었다. 친환경적 임업회사가 벌목한 나무를 사용해서 만든 제품은 산림인증을 부여해 적극 구매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에 대해선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그린피스 서부캐나다야생지보존회 등 시민단체와 산림 전문가들은 싹쓸이 방식의 벌목 금지, 경사면에서의 벌목 금지, 연어 산란 하천에서의 벌목 금지 등 기준안을 마련 중이다.

이에 따라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정부도 적극 나섰다. 1995년 엄격한 규제가 담긴 산림작업규정법을 제정해 싹쓸이 벌목 가능면적을 이전의 수천ha에서 해안 40ha, 내륙 60ha로 줄였다. 벌목 회사들도 시민들의 요구에 맞추어 싹쓸이 벌목을 포기하거나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캐나다 시민단체들의 산림 보존 노력이 하나둘 씩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밴쿠버 시민들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산과 숲이 과거에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었지만 이제는 시민 스스로가 지키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밴쿠버〓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