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중하 릴레이시리즈]월드컵과 홍보<하>‘붐’ 노이로제

  • 입력 2002년 5월 10일 17시 30분


지난해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미국의 평가전에서 한국 축구팬들이 열광하고있다.
지난해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미국의 평가전에서 한국 축구팬들이 열광하고있다.
지난해 초 한 외국기자를 만날 기회가 있어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어찌보면 외국인에게 의례적으로 던질 수도 있는 이 질문에 그 기자는 “역동적인(Dynamic) 사회”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무릎을 쳤다. 그만큼 우리 사회를 잘 표현한 영어 단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현수막과 깃발로 거리마다 나부끼고 TV 광고에까지 등장한 캐치 프레이즈 ‘다이내믹 코리아’의 시작이었다.

물론, ‘다이내믹 코리아’의 탄생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는 이전부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하나의 단어를 찾기 위해 고심해왔다.‘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나 자신이 그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위 안팎의 반론에 부딪히게 됐다. “너무 격동적이고 불안정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그냥 밀어 붙일 수도 없어 몇 달을 잊고 지냈는데 공교롭게도 이 캐치프레이즈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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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반전 월드컵조직위 홍보국장 부임 당시만 해도 “앞으로 월드컵 붐을 어떻게 유지해나가야 할 것인가”만을 고민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유지’의 차원이 아니었다. 변변한 홍보 간행물조차 없는 상황에서 월드컵 붐을 느낀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곧바로 9개 언어로 된 리플렛을 제작해 재외공관에 배포하는 것으로 월드컵 홍보를 시작했다.

이후 각 경기장 개장 행사와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본선 조 추첨행사 등을 거치면서 국내의 월드컵 분위기는 서서히 달아올랐다. 이 와중에 월드컵 붐이 올라가고 사그라드는 것은 축구대표팀의 성적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대표팀의 성적에 목을 맨 적도 있다. 지난해 8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이 대패하는 장면을 새벽까지 TV로 지켜보다 그간 쌓았던 공든 탑이 무너져내리는 느낌까지 받았다.

월드컵 붐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른바 ‘붐이 인다’는 것과 ‘붐이 없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월드컵 홍보실무자로서의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지난해 12월 부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 조추첨 행사장에 내걸린 월드컵 배너.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외신기자들의 기사는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한 호주 신문은 비무장지대(DMZ)앞까지 월드컵 엠블럼 깃발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월드컵 열기가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일본의 산케이신문도 자원 봉사자 모집 과정을 보도하면서 ‘한국은 높고 일본은 낮다’라는 명쾌한 제목을 뽑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한 인사는 “월드컵 열기는 축구선수의 발끝에서 나온다”며 “월드컵 붐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라며 조급한 홍보담당자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월드컵 붐 노이로제를 끼고 살던 중에 어느덧 월드컵 축제가 이미 시작된 것을 느낀다. 이제 ‘붐 노이로제’에서 벗어나 개최 국민으로서 월드컵을 마음껏 즐겼으면 한다. 국민들도 국가대표팀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을까.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 대회도 아니고 한국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행사도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참가국들을 이해하고, 교류를 증진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국제 행사라는 사실만으로도 월드컵은 충분히 치를 가치가 있는 행사다.

인병택 한국월드컵조직위 홍보국장 btlin@2002worldcup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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