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인화와 그의 작품에 대한 몇몇 기사를 찾아 느슨하게 훑어보다 신동아 2001년 9월호에 실린 정혜신의 인간탐구 ‘김근태의 이상주의 이인화의 영웅주의’ 중 한 구절에 눈길이 갔다. “1995년 한 잡지는 이인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인화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치밀하고 능란한 이데올로그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어떤 의도나 장치를 숨겨 놓았고, 논쟁을 격발시켰다.’”
의도… 장치… 논쟁…. 기자는 최근 이인화 중단편집 ‘하늘꽃’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초원의 향기’(세계사) 이후 4년만에 낸 소설집 ‘하늘꽃’에는 5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신작 ‘하늘꽃’을 비롯해 200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시인의 별’과 ‘려인(麗人)’, ‘초원을 걷는 남자’ ‘말입술꽃’ 등. 공통적으로 몽골이라는 거대한 평야의 바탕 위에 그려낸 작품들이다. 4년이 지났어도 작가의 붓끝은 초원의 향기 위를 떠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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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꽃’에는 몽골과 고려 접경지역의 감찰관이었던 나얀(단도선사)과 후에 이성계의 서모(庶母)가 된 고려 여인 쏠마의 사랑이야기, 이에 더해 이성계의 선대(先代)인 이자춘 5형제가 벌이는 권력다툼이 조밀하게 얽혀있다. 작가는 ‘스스로 재구성한 기억을 품고 사는’ 단도선사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되는 ‘흔들리는 자아’를, 5형제가 벌이는 권력의 이동 및 세대간 갈등으로는 ‘글로벌리즘 대 민족국가의 대결구도’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떠올린 장면은 그 즈음이었다. 소설집을 출판한 동방미디어의 하응백 대표는 “이 소설(하늘꽃)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정치적인 함의(含意)가 읽힌다”고 ‘과감히’ 말했다. 저자인 이인화씨는 약간 당황한 듯 “아니다. 그런 얘기는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결국 이씨는 “2주전 탈고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품을 썼다”고 덧붙였다.
‘하늘꽃’에서 5형제는 민족국가의 울타리를 지키려는 나이든 3형제와 스스로를 몽골인이라 생각하는 젊은 2형제가 대립해 혈육간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벌어진다. 간담회에서 그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게될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해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후보’ ‘미국적 합리주의 성향의 후보’라고 넌지시 평하면서도 “작품과 직접 결부시키지는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가 작품 속에 숨겨져 있다 해도, 경계심으로 팽팽해진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읽지 않는다면 그저 한편의 재미있는 역사소설로 술술 읽힌다. 이인화 특유의 향취가 나는 역사같은 소설, 소설 같은 역사를 느끼면서.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드는 허무함은 박하 사탕을 다섯개쯤 그냥 삼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왜 4∼5년에 걸쳐 아직 몽골에 천착(穿鑿)하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포함된 작품들이 ‘초원의 향기’의 연장 선상에 있으며 이번 소설집을 끝으로 더 이상 몽골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13세기의 몽골에도 우리와 같은 삶과 고난이 있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교양과 정보를 주는 이야기꾼’이고 싶다며 ‘계몽주의적’인 전작들에 불만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선생님처럼(사실 이화여대 국문과 ‘류철균 교수’ 이니 선생님이기도 하다), 조분조분 얘기하는 그의 스타일에는 변함이 없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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