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구제역은 무슨 병인가. 아마도 구제역이 어떤 돌림병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구(口)는 입, 제(蹄)는 발굽, 역(疫)은 돌림병을 뜻하므로 한자에 박식한 사람은 ‘입과 발굽에 생기는 돌림병’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이야 감도 잡기 어려운 말이다. 이를 ‘입발굽병’이라고 표기하면 얼마나 쉽게 알 수 있을까.
사람에게도 입발굽병 비슷한 병이 있다. 매년 4, 5월에 아이들사이에서 유행하는 ‘수족구병’이 그것. 대부분 5∼7일 만에 자연치유되기 때문에 구제역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염력이 강하고 손발과 입에 물집이 생긴다는 점에서 소아과 의사들은 ‘사람 구제역’이라고도 부른다. 이 병도 ‘손발입병’으로 부르면 뜻이 곧바로 전달된다.
그런데 입발굽병이니 손발입병이라는 말은 필자가 지어낸 용어가 아니라 대한의사협회가 2001년 초 새로 펴낸 ‘우리말 의학용어집’에 수록된 용어다.
당시 의협은 어렵고 뜻이 통하지 않는 의학용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바꾸고 책으로 펴냈다. 용어집에서는 견갑골(肩胛骨)은 어깨뼈, 이개(耳蓋)는 귓바퀴, 안구건조증(眼球乾燥症)은 눈마름증으로 바꿨다. 췌장(膵臟)과 이자, 담낭(膽囊)과 쓸개, 골다공증과 뼈엉성증 등은 함께 쓰도록 했다.
의학용어에는 한선(汗腺) 갑상선(甲狀腺) 전립선(前立腺) 등 ‘샘’을 뜻하는 선(腺)이 들어간 용어가 많은데 모두 샘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한선 대신 땀샘만 쓰고, 갑상선 대신에는 갑상샘과 방패샘을 함께 쓰도록 했다. 전립선은 모양을 본떠 밤톨샘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립샘으로만 쓰기로 했다.
동아일보사 헬스팀은 지난해부터 의협의 취지에 동감, 가급적 쉬운 새 용어를 쓰고 또 우리말의 특성을 살려 의학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사들은 새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더 많은 의사들은 의협에서 새 용어집을 만들었는지조차 모른다. 이 때문에 아직 병원에서는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로 환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는 독자들과 e메일을 주고 받을 때 알기쉬운 새 용어를 쓴다. 의사소통이 잘된다는 것도 하나의 큰 기쁨이다.
질병과 의학에 대한 설명은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다. 의사가 쉬운 용어를 써서 괜한 오해를 막고 이해를 높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의사들이 쉬운 용어 쓰기를 일반화해 또 하나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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