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느 명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재학중인 한 한국인 유학생은 최근 수업시간에 이같이 발표를 끝낸 뒤 받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한다.
5명의 학생들이 1개조가 돼 사례를 준비했다. 대상기업으로 삼성전자를 고르는 데 다른 외국인 학생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때마침 권위 있는 경제잡지 ‘포천’이 커버스토리로 삼성전자의 성공사례를 다루었다. 윤종용 부회장이 표지 인물로도 나왔다.
발표는 성공을 거두었다. 20분 설명에 10분의 질의응답이 이어지는데 질문이 끊이지 않아서 예정보다 10여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우량 글로벌 기업으로 떠오른 데 따른 반응이었다.
세계 각국의 MBA과정 학생은 기업의 실제 사례를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생생한 사례를 통해 기업의 흥망을 익히는 것이다. 단골손님은 IBM, GM, 도요타, 소니 등 세계적인 유명 기업.
최근 들어선 한국의 기업이 사례 연구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포스코 등이 그들이다. 미국에서 최근 출판된 여러 경영학 교과서에도 한국 기업의 사례가 숱하게 소개돼 있다.
과거엔 한국 기업과 관련해서는 ‘재벌(chaebol)’의 부정적인 면만 주로 실렸다. 그러나 1, 2년 전부터는 달라졌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면모와 함께 한국 기업의 높아진 투명성, 잘 추진되는 글로벌 전략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002년 세계 500대 글로벌 기업을 10일 발표했는데 여기에 한국 기업 6개가 포함됐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국민은행, 한국전력, 포스코 등이다. 한전과 포스코는 올해 새로 500대 기업으로 뽑혔다.
이제 한국의 대기업은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간판급 기업에 대해서는 월스트리트에도 전문 애널리스트들이 여럿 있을 정도다.
이런 판국에 포스코 계열사들의 타이거풀스 주식 매입 논란은 국제적으로 낯 뜨거운 일이 되고 있다. 유상부 포스코 회장이 로비스트로 의심받고 있는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와 접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포스코에 대한 신용도에 흠집을 남겼다. 그러다 보니 포스코의 과거 경영활동 가운데서도 “정치권과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적잖다.
포스코가 경기 성남시 백궁 정자지구의 부지를 매입했다가 포기한 배경도 석연찮다.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포스코경영연구소의 고문으로 선임한 것은 정치적 포석이 아니고 무엇인가. 유 회장과 대통령 3남 김홍걸씨, 최규선씨 등이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주선으로 만났다는 증언이 하루아침에 번복된 경위도 궁금증을 낳는다.
유 회장은 98년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정치권력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뜻과는 달리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민영화 이후의 포스코에 대해 외압을 넣었단 말인가.
이제 국내 기업이라 해서 정치권력이 마음대로 주무르려 하다간 국제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의 신용도에도 치명타를 맞게 한다. 오호라, 포스코의 친(親)정치권 성향 사례가 미국 MBA 수업시간에 발표되는 끔찍한 장면이 없어야 할 텐데….
고승철 경제부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