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이랜드 “人事개혁엔 쉼표가 없다”

  • 입력 2002년 5월 21일 17시 34분



이랜드그룹 8개 계열사 가운데 패션회사인 이랜드, 리틀브렌, EL인터내셔널 등 3개 회사는 매월 말 모든 직원에게 한 달 ‘성적’을 통보한다.

직원은 자신이 속한 사업부의 성적과 디자이너, 영업직, 구매, 생산직 등 각 직군(職群)에서 자기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게 된다.

‘1위 A씨 기여제조이익 40억8400만원, 2위 B씨 24억9200만원 …41위 Z씨 -1억400만원.’ 이랜드 10개 브랜드 의상 디자이너 41명의 작년 말 성적표다.

10위 이내에 입사 2년 차 디자이너 3명이 포함된 반면 하위 디자이너에는 입사 6년이 넘는 고참 디자이너가 많이 끼어 있다. 연공서열이 끼어들 틈이 없다.

“디자이너별로 이익 기여도를 조사해보니 1등과 꼴찌의 격차가 480배나 됐다. 개인별 성과가 이렇게 다른데 똑같이 대우할 수 없다고 보고 연봉제와 성과급제를 도입했다.”(장광규 상무, 최고지식경영자).

외환위기 후 많은 기업들이 성과 위주 평가제를 앞다투어 도입했다. 신(新)평가제는 연공서열에 길들여진 조직에 활력을 가져오고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를 냈다. 하지만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직원간 또는 사업부간의 위화감, 지나친 개인주의, 단기 업적주의, 평가항목에 대한 불만,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

99년 강도 높은 평가제를 도입한 이랜드도 이런 부작용에 부닥치면서 매년 평가제를 개선해왔다. 이랜드가 걸어온 3년5개월의 궤적은 ‘조직 속에서 인간은 어떤 평가제와 보상시스템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회사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영업성과 위주 평가의 명암〓98년 말 이랜드는 파격적인 평가제와 보상시스템을 발표했다. 99년초부터 성과와 개인별 역량을 종합평가해 연봉을 결정하고 각 브랜드 팀의 영업성과에 따라 연말에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것. 또 직군별로 성과에 따라 개인별 순위를 매겨 공개했다.

팀장 이상은 계약조건의 성취도에 따라 연봉과 성과급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99년 말 처음으로 성과급이 주어졌다. 3개 사 23개 브랜드 팀 가운데 한푼도 못 받은 팀부터 최고 2500%까지 받은 팀도 나왔다.

변화가 시작됐다.

“자기가 디자인한 옷이 얼마나 팔렸는지 관심이 별로 없던 디자이너들이 매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매장에 직접 찾아가 어떤 옷이 잘 팔리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디자이너가 늘어났다.”(디자이너실 조수정 과장)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직원들의 모든 관심과 행동이 회사의 영업성과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영업, 구매, 생산, 기획 등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 아래 뭉치기 시작했다.”(언더우드사업부 홍재근 본부장 )

반면 부작용도 나타났다.

영업성과만을 강조하다 보니 각 팀이 최소한의 투자비도 아끼며 수익 올리는 데만 골몰했다.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회사의 장기적 수익과 연결되는 브랜드 파워, 대리점 점주간의 관계 등이 나빠졌다.

▽비(非)재무지표의 도입〓회사측은 영업성과만으로 성과급을 주는 것은 단기실적의 함정에 빠져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랜드는 보완책으로 2000년부터 브랜드 파워지수, 매장관리 점수, 재고율 등 비재무지표를 개발해 평가항목에 추가했다. 투자비를 줄이지 않도록 팀마다 매출의 일정 부분은 무조건 투자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조직 내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성과급의 상한선도 뒀다. 작년 상한선은 1100%.

“직원들이 평가항목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단기성과는 물론 미래의 성과도 좋아지도록 성과표를 재무, 고객관점, 프로세스, 지식경영 등 4부분으로 나누어 골고루 반영했다.”(김광래 전략기획부장)

▽수치화(數値化)할 수 없는 항목도 있다〓올해엔 평가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전 직원에 대해 호봉제를 완전 철폐하고 개인성과 연봉제를 도입했다.

팀별 성과급제에 개인별 성과급제를 가미한 것.

또 팀장이 주관적으로 팀원의 능력, 상품 구성력 등을 평가하도록 했다. 수치화할 수 없는 평가항목이 있다는 것을 회사가 인정한 것. 6개월마다 직무 만족도를 조사해 평가항목 개선에 적극 반영하기로 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시장환경의 급변, 동료들이 잘해서 성과가 좋은 경우, 회사 전략상 성과가 좋은 팀에 있는 직원을 성과가 나쁜 팀으로 보직이동시킨 경우 등 기존의 성과지표로 평가할 수 없고 또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지식경영실 김교연 차장).

▽성과 평가제의 교훈〓장광규 상무는 “회사가 평가제를 직원 통제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직원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와 동기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쓸 때 평가제의 진정한 위력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영업팀의 이규재 대리는 “동기 부여, 회사의 장단기 성장, 평가제에 대한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 등 세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려면 노사간 대화를 통해 평가제를 끊임없이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이랜드 디자이너 부문 평가제 및 연봉체계 변화
 연봉성과급
1998년까지호봉에 따른 기본급성과가 좋을 때 전체 임직원에게 동일한 성과급 지급
1999년기본급. 팀장 이상은 개인성과 연봉제 도입브랜드별 영업성과에 따른 성과급
2000년기본급. 신입직원도 개인성과 연봉제 실시성과급 기준에 비재무지표 도입
2001년2000년과 동일비재무지표 확대
2002년호봉제 완전 철폐, 전 직원 개인성과 연봉제 실시능력고과, 후계자 양성 등 수치화할 수 없는 부분 정성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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