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평화재단 토론회]"1민족 2체제 공존 필요"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00분


22일 열린 '신 국제질서 형성과 분단국의 장래' 공개 토론회 - 박경모기자
22일 열린 '신 국제질서 형성과 분단국의 장래' 공개 토론회 - 박경모기자
《세계정치학회(IPSA·회장 김달중·金達中·연세대 교수) 분단국통합연구위원회(회장 이서항·李瑞恒·외교안보연구원 교수)와 동아일보 부설 21세기평화재단·평화연구소(소장 남중구·南仲九)는 2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 국제질서 형성과 분단국의 장래’를 주제로 이서항 교수의 사회 아래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가한 한국 미국 독일 대만의 전문가들은 새로운 국제질서 하에서의 분단국의 생존 전략 및 통일에 대비한 한국의 전략 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김 회장은 축사에서 “지난해 9·11 테러 이후 소위 ‘후 냉전이후 시대’로 불리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며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가 분단국의 체제와 정권 및 사회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고 말했다.

21세기평화재단·평화연구소(설립자 김병관·金炳琯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는 각종 학술 문화사업과 민간교류 등을 통해 한반도의 화합과 번영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0년 4월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독일 통일 전후의 사건으로 본 정치적 교훈(고트프리드 카를 킨더만 독일 뮌헨대 교수)〓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일 민족의 분단은 냉전 상황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를 극복한 독일 민족의 내부적 화해는 상당 부분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신동방정책(Ostpolitik)에 의해 성취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책은 이른바 ‘주고받기’(give and take) 원칙에 따라 수백만명에 이르는 동서독 주민들의 접촉과 실용적 협력을 실현시키는데 기여했다. 그 출발점은 서독이 독일을 대표하는 정당성이 서독에만 있다는 정책을 포기하고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 것이었다.

양독 간의 두 차례 정상회담은 본래 의도된 바대로 내부체제 간 화해 과정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상호 군사력 자제선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서로 적대적인 체제의 화해 과정에서 한 쪽의 과도한 접촉 시도는 다른 한 쪽을 사회적 또는 이념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북한이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통일은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제국주의적 패권의 포기라는 외부적 조건과 동독의 평화적 체제 전환이라는 내부적 조건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통일 독일의 사회 경제적 통합 체제를 구축하는데는 예상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진행 속도도 빠르지 못했다.

독일이 경험한 과도한 재정적 부담은 한국 통일 과정에서 결코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 다만 독일이 통일 이전에 주변국에 독일 통일을 지원해달라고 꾸준하게 협조를 구했던 점을 거울삼아 한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도 주변 국가와 꾸준한 접촉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는 근대 민족국가 개념에 따른 정치체제가 아니라 수천년간 분열과 통합의 역사가 되풀이돼 온 중국식 정치체제의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관계도 이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다체계 국가 개념의 핵심은 분단국의 서로 다른 두 체제간의 주민교류 또는 문화적 접촉을 민족 내부의 교류 및 접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흔히 거론되는 ‘1민족 2체제’ ‘1주권 2관할권’ 등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독일에서는 이 개념이 ‘공동 지붕이론(common roof theory)’으로 불렸다. 남북기본합의서도 단일민족의 바탕 위에 다체계 국가 개념이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남북한도 통상의 국제적 관계가 아니라 남북한의 특별한 협정에 의해 규제되는 특수한 관계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다체계 국가 개념 하에서 한 민족 내의 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사회적 문화적 상업적 교류를 확대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다. 유럽연합(EU)을 동아시아에 이식해오는 게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볼 경우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독일의 통일모델이 양안관계에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상황도 다르다고 하지만 부정적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심리적 통합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협상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 꾸준히 진행되지 못하고 ‘시작-중단’을 반복해온 이유는 ‘상대방 제압하기’라는 북한의 독특한 협상 행태에 기인한 것이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과 같은 부정적 수단이나 상대방에 대한 극진한 환대 등 긍정적 수단을 동원해 협상환경을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어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노력한다.

북한이 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한 뒤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부부를 초청해 극진하게 대접해 94년 6월 핵위기 극복에 성공한 것은 이런 양극단 수법의 예다. 2000년 6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와 김 대통령을 영접하는 등 파격적인 환영을 한 것도 자신이 협상을 주도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다 북한의 협상스타일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당국간 협상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의 전망도 밝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경제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면서 대외협상 행태가 달라진 점이 시사하듯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협상 행태도 달라져 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 모두의 염원이나 아직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현재의 분단상태가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외교적 동맹관계는 북한에 의한 무력통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북한은 또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포기하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통일 노력을 가속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단계에서 가장 실용적인 남북관계의 정책 대안은 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적대적 갈등구조 속에 있는 남북관계의 근본 성격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반도에서의 통일논의는 세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국은 과거 세계화에 편입될 경우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충분히 경험했지만 시장질서와 법칙에 순응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맛보아야 했다.

남과 북의 경제통합이나 정치적 통합을 이뤄내기 위한 한국인의 노력은 원대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통합된 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은 동아시아 지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지역 내 경제통합을 이끌어내려면 자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경제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유럽연합(EU)에 비견되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설립을 주도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토론회 요지▼

주제발표에 이은 토론에서는 분단국의 통합에 대비한 체계적인 전략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로 개진됐다.

하용출(河龍出·서울대) 교수는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돼가는 세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남북 간의 격차 확대가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남북한을 포함한 분단국의 장래를 논의하기 위해 아태지역 내 국가와 북한 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문제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했다.

북한의 협상행태에 대해 전인영(全寅永·서울대) 교수는 “북한이 협상환경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환경을 조작하는 것은 협상 과정에서 내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대외 협상행태를 비판한 김용호 교수의 지적에 대해 “북한의 협상행태에도 나름대로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김 교수는 “북한은 최근 경제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협상행태를 바꾸지는 않은 것 같다”고 거듭 북한 측의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다.

오승렬(吳承烈) 통일연구원 경제협력연구실장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볼 때 점진적 통일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급격한 통일의 가능성도 높다”며 대책마련을 강조했다.

안인해(安仁海·고려대) 교수는 웨이융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에 대해 “다체계국가 개념은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兩岸) 관계를 설명하는 데 유효하며 한반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리〓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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