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약 3.5배 크기인 모로코는 아랍인 60%, 베르베르인 36%와 유럽인 유대인 흑인 등이 함께 삶을 엮어가고 있는 나라다. 지금은 소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은 기원 전부터 정착해 온 유목민족으로, 인종적으로는 코카소이드에 속하는데 베르베르-유로아프리카 인종이라 부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흑백 양 인종의 특징이 혼합되어 있다. 아랍족은 주로 도시, 베르베르족은 농촌이나 아틀라스 산맥 인근 유목지대에 많이 분포한다. 소수의 베르베르족은 현재까지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고유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오랜 역사에 걸친 아랍족과의 동화로 현재는 인종 구분에 큰 의미가 없다.
카사블랑카가 북아프리카 최대 도시로서 사람들로 북적댄다면,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는 비교적 조용하고 수려한 모습의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근대 건축물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도심에서는 전통 이슬람교도 복장의 여인들과 현대적인 패션 감각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조용히 지나다니고, 곳곳의 작은 찻집에서는 더위를 피할 겸 차를 즐기는 남정네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근대 건축물과 나무의 완벽 조화▼
따스한 햇빛이 도심 위로 떨어지고 대서양 연안의 부레그레그 강이 흐르며 유럽풍과 아랍풍의 수려한 건축물과 도시를 수놓은 나무들이 이처럼 조화를 이루는 곳도 드물 것이다. 이렇듯 여러 면에 걸친 도시의 아름다움으로 라바트는 북아프리카에서 인구 10만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
모로코 사람들의 뛰어난 장인 정신은 라바트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먼저, 역대 왕의 관을 모신 모하메드 5세 묘에서는 모로코의 화려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현 국왕의 조부인 모하메드 5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으로 지어진 이곳은 전통 아랍 양식과 현대 건축 기법이 조화를 이룬 대규모 구조물이다. 1962년부터 69년까지 7년간 400여명의 장인이 정성 들여 이 묘를 건립했는데, 본 건물 외부에는 둥근 돌기둥이 우뚝우뚝 서 있고 내부 지하에 선왕들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모하메드 5세의 관은 하단 중앙에 놓여 있고 하산 2세의 관은 왼쪽 모퉁이에 있으며 하루종일 코란이 낭송되는데, 전 국왕을 기리는 모로코 국민들의 마음이 느껴져 숙연해진다. 지금도 많은 라바트 시민들이 휴일이면 이곳을 찾아와 참배하고 휴식을 취한다.
또 하나 볼거리는 이 묘를 지키는 전통 복장을 한 근위병의 모습이다. 강렬한 빨간색 의상에 초록색 모자를 쓰고 희디흰 망토를 두른 채 백마 위에서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근위병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근위병 복장에서 볼 수 있는 빨간색과 초록색은 모로코 국기와 연관 있는 듯하다. 모로코의 국기는 빨간색 바탕에 초록색의 별이 그려져 있는데, 빨간색은 왕실을, 초록 별은 이슬람교의 다섯 가지 율법을 상징한다고 한다.
라바트의 백미는 스페인 무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의 하나인 하산 탑이다. 하산 탑은 모하메드 5세 묘와 마주 보고 있는데, 라바트 정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또한 매력적이다. 하산 탑은 베르베르 왕조인 야콥 알 만수르가 12세기 말에 계획했던 장대한 모스크의 첨탑으로 건설되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한 변 16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 44m까지 올라가다 중단되었는데, 탑의 남쪽에는 300개 이상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이 모스크가 완성되었더라면 아프리카 최대의 모스크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규모와 아름다움은 마라케시의 쿠투비아 사원과 견줄 만하다.
현 국왕 모하메드 6세가 거처하는 왕궁의 장대함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1894년 세워진 왕궁에서 현재 모든 국가 공식행사가 치러지며 국왕과 총리 집무실도 이곳에 있다. 왕궁의 중심부는 약 10m 높이로 쌓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곳곳에 성문이 있고 해안까지 이어져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성문은 차량들이 왕래하는 출입구로도 이용된다.
이 밖에도 정부청사, 외국공관, 유럽인 거리, 라바트대학, 셸라와 고고학박물관, 구시가의 성문 그리고 라바트 인근의 옛 왕궁터 등 라바트는 참으로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작열하는 태양, 호기심 많고 신앙심 깊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코란 소리, 베일을 쓰고 걸어 다니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서구의 현대적인 여인과 견주어도 손색 없는 세련된 여인들이 공존하는 등 과거와 현대가 함께하는 듯하다. 조용히 수려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 라바트. 이곳이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까닭을 한번 와본 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글·사진 / 전화식 (Magenta International Press) > magenta@kornet.net
◇ Tips
베르베르족 : 베르베르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바르바로이로, 고귀한 종족의 출신자라는 뜻이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주로 아틀라스 산지와 해안평야 일대에 흩어져 살며, 아프리카에서는 보기 드물게 갈색 머리와 푸른 눈을 갖고 있다.
쿠투비아 사원 : 면적이 5400m2로 안에 17개의 예배당이 있을 만큼 대규모 사원이다. 마라케시의 상징이라는 이 모스크의 탑은 높이 67m.
3개의 황금 왕관을 얹은 탑은 아침저녁으로 햇살을 받으면 더욱 눈부시게 빛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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