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절상 긍정적 효과 많아▼
먼저, 요즘과 같은 환율 급변에 있어서 투기적 요소를 너무 과장하지 말았으면 한다. 혹시나 수출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환율 하락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책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해, 환율에 대한 수요자들의 정상적인 전망을 기초로 한 외환 수급조차도 투기적인 수급으로 단정하고 대응한다면 오히려 수급 불안을 촉진할 뿐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정부나 언론, 우리 국민 대다수가 현재의 환율이 절상되는 이 상황을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해서라도 지금의 추세를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 돈의 대외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종합적으로 보아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국제수지 상태가 흑자이거나, 종합적인 경제상황이 비교 대상 국가에 비해 호전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경제라면 절상된 환율수준에서 새로운 균형을 이루어갈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원화의 절상 현상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어쩌면 훨씬 더 일찍 서서히 왔어야 했다. 어떤 이유로 지체되어 왔기 때문에 최근 들어 급등하게 된 것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98년 이후 우리 정부가 환율의 움직임을 다른 정책적 고려 없이 대체로 시장의 수급원리에 맡기는 한편 필요 이상의 많은 외환보유액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환율은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절상된 상태에 와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한 주요한 증거의 하나로 제시하는 충분한 외환보유액의 확보나 99년 이후 국제수지의 흑자에 뒷받침된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이 어쩌면 원화 가치의 절상으로 얻을 수 있었던 많은 장점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즉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제운용, 기업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경쟁력의 근원적인 향상, 적절한 통화 공급으로 인한 물가수준의 보다 안정적인 관리 등을 그 대가로 잃어버렸다고 본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정부 당국자들과 심지어 경제학자들 중에도 환율에 관한 한 매우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국제수지 적자가 있는 경우에는 시장원리에 의해 당연히 환율이 절하되어야 국제수지의 균형이 달성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99년 이후 국제수지의 흑자가 몇 년씩 계속되면서도 환율의 절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것이다.
97년 외환위기가 오기 직전의 외환시장은 외환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외환시장은 환율의 가격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마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시장상황을 도외시하고 당시 환율을 더욱 절하해 외환수요를 조절하지 않아 외환 부족을 초래했다고 해서 당시 환율정책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환율정책 시장에 맡겨야▼
그러면서도 99년 이후 계속되어 온 국제수지의 흑자현상은 당연히 우리 원화의 절상요인이 되어 왔다. 이를 적절하게 수용해갈 수 있는 시장조건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다른 정책목표를 앞세워 환율정책을 시장원리에 거슬러 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제대로 제기되지도 않았다. 이런 식의 모순된 환율관이 이번 환율 문제 대응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보여준 성장과 국제수지의 흑자가 경쟁력의 본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에 뒷받침된 것이었다면, 이제 더 이상 거시지표의 단기적인 변동과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일관성 있게 경제를 운용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업들은 상황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적응할 태세가 어느 정도 되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더 초조해하고 단기적인 시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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