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다.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따라가, 출근하는 사람 뒤통수에 대고 좀 심하다 싶게 오금을 박는데, 놀랍게도(?) 남편이 반항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게 아닌가.
“어? 오늘은 안돼, 안돼! 저녁에 축구 보고 오기로 했단 말야.”
“축구? 무슨 축구? 그거 집에 와서 보면 안되는 거야?”
“안돼! 절대 안돼! 당신, 어차피 안 볼 거고 나 혼자 보기 너무 재미없단 말이야. 동료들하고 광화문 가서 응원도 하면서 볼 거야.”
“광화문에 무슨 축구장이 있니?”
냉큼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남편이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이번에 새로 지은 월드컵 경기장 있잖아. 거기가 광화문이야.”
그런가? 하다가 곧 속았다는 걸 알았지만, 남편이 탄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날 텔레비전 채널을 고정시키고 축구중계를 봤다. 혼자서. 우리나라가 잉글랜드와 싸워 1 대 1로 비겼고, 텔레비전은 온통 흥분과 기쁨으로 뒤덮였다. 그녀로선 그게 더 의아했다.
이긴 것도 아니고, 겨우 비긴 경기에 뭐, 그처럼 법석을 떨게 있담, 싶어서였다. 다행히 사람 좋은 그녀의 남편은 그 얘기를 듣고 크게 웃더니, 프랑스와의 경기는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봤다.
왜 남자는 축구경기에 열광하는 걸까? 원시시대부터 남자는 수렵생활을 해왔다. 언제 활을 쏠 것인지 기회를 포착하고, 계곡과 능선을 달리며 사냥하던 기질이 집단무의식으로 전해져 그 비슷한 모든 스포츠, 특히 축구나 럭비같은 과격한 운동에 열광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지….
소소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에 자신이 왜소해져간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
이번 월드컵 기간은 그런 남편들의 기를 살려주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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