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좀 더 실감나게 보기 위해서인지 대형TV가 잘 팔립니다.
현대백화점 서울본점에서는 5월1일부터 20일까지 벽걸이TV 등 홈시어터 상품이 5억8300만원어치나 팔렸어요. 그런데 판매왕을 뽑는다면 ‘라이언’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가지 않을까 싶네요.
29인치 이하 브라운관 TV가 주력이던 시절에는 가전매장의 전시용 화면에 울긋불긋한 꽃밭에 벌이 날아가는 장면이나 탐스러운 과일 등이 가장 흔하게 등장했어요. 화질이 선명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죠.
그러나 최근 가전매장에서는 ‘현란한 영상과 심장을 울리는 사운드’가 한껏 부각되는 작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들이 라이언일병 구하기, 글래디에이터, 물랑루즈 등이지요.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초반 20여분간 이어지는 대규모 전투와 글래디에이터의 게르마니아 전투 장면을 가전 매장에서 많이 보셨죠?
새로 장만한 홈시어터를 친구나 친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도 영화 자체에 대한 선호와는 무관하게 전시용으로 ‘라이언’류의 DVD 타이틀을 구입해 두죠. DVD 쇼핑몰 ‘파파DVD’에 따르면 스타워즈, 진주만, 쥬라기공원 등 ‘홈시어터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늘 판매 순위 상위권에 있어요.
제품 종류에 따라 매장에서 틀지 않는 금기 품목도 있지요. 미니 컴포넌트에는 클래식 교향곡을 틀지 않아요. 100여개 악기의 음색을 살리기 어려워 역효과가 나거든요. 신세계백화점 가전 바이어 백승렬 대리는 “오디오 매장의 이런 상술을 아는 고객 중에는 들려주는 음반에 현혹되기 싫다며 별도로 음반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하는군요.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