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일 다음날인 1일 일본 주요 일간지들이 내건 제목들이다. 21세기 첫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함께 열면서 양국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가 한껏 느껴진다.
월드컵 대회만 보면 한일 양국은 묵은 갈등을 털어내고 진정한 ‘친구’가 될 것처럼 보인다. 두 나라 국민이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함께 응원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물론 그동안 어려움도 있었다. 역사교과서 문제나 꽁치잡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을 둘러싸고 긴장과 마찰이 잇따랐다. 그때마다 ‘그래도 월드컵은 무사히 치러야 한다’는 마음은 양국이 똑같았다.
얼마 전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총영사관에 탈북자 가족이 진입했을 때도 한국은 대일(對日) 외교에 상당히 신경썼다. 그 결과 고이즈미 총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을 방문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개막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일본의 ‘또 하나의 얼굴’이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의 발언은 순식간에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것도 양국민이 가슴 졸이며 어렵게 준비해온 월드컵 개막 첫날에.
일본이 핵을 보유하면 중국이 발끈할 것은 분명하다. 동북아의 균형과 안정은 깨지고 군비경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핵무기 보유 의혹을 사고 있는 북한의 핵 개발 의욕을 자극할 수도 있다. 비핵화를 선언한 한국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의 압박을 받게 된다. 동아시아의 핵 개발 경쟁에 불이 붙게 되는 것이다.
이달 말까지 한일 각 도시에서 월드컵 경기가 이어진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고 양국이 꼭 잡았던 손을 풀고 나면 일본은 또 어떤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인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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