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함정임 소설가]아프리카, 내 사랑

  • 입력 2002년 6월 4일 18시 20분


월드컵 개막전 다음날 오후 7시. 대학로 폴리미디어 시어터. 세네갈 출신의 세계적인 록 뮤지션 이스마엘 로의 서울 초연 시작 직전. 무대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검은 대륙처럼 어두웠고, 객석은 여명을 계시하는 주술처럼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연기에 휩싸였다. 이변에 놀라 발길이 얼어붙어버린 것인지,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록 객석은 빈곳이 많았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곳곳에 포진한 프랑스인들과 자주 눈길이 마주쳤다. 그들은 전날 한쪽에게는 축복을, 다른 쪽에게는 불행을 안겨준 운명의 장난 같은 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한껏 흥분된 표정이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이스마엘 로의 진가를 알지 못했던 나에게 그날의 노래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on vera).’

콘서트가 시작되고, 뮤지션들은 어제의 황홀을 다시 불러내려는 듯 세네갈 팀의 유니폼을 재현했다. 음악이면 음악, 스포츠면 스포츠의 본질을 사랑하는 나는 조금 기분이 상해서 눈을 객석으로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개막전 기적의 주역들이 어둠에 길을 내며 속속 들어와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닌가. 불과 하루 전 광활한 초록 구장을 검은 사자처럼 누비던 그들이 아닌가. 파프 부바 디오프를 비롯한 세네갈 팀은 놀랍게도 이스마엘 로의 리듬에 맞춰 완벽한 코러스와 춤을 자랑했다. 첫골 후에 보여준 그들의 인상적인 의식(儀式)이 그러한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호흡에서 들려나온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연주는 훌륭했다. 거기 모인 다종 다양한 관객들은 이스마엘 로를 따라 비록 프랑스어이긴 하지만 한 목소리로 ‘아프리카, 내 사랑!(africa, mon amour)’을 열창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는 불꺼진 무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야흐로 네그리튜드(흑인성)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함정임 소설가 etrelaji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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