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동양학도 영어를 알아야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 입력 2002년 6월 7일 17시 40분


쯔진청(紫禁城) 앞에서 영어학습 강의를 듣는 중국인들
쯔진청(紫禁城) 앞에서 영어학습 강의를 듣는 중국인들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데이비드 크리스탈 지음 유영난 옮김/207쪽 12,000원 코기토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는 데 쏟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 무엇보다도 그 결과의 부진에서 오는 좌절을 지켜보는 것은 영어 교육과 무관하지 않은 본 필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다.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그의 저서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English as a Global Language)에서 세계의 언어가 영어로 단일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각 개인과 민족 정체성의 중요한 근원인 민족어를 존중하고, 복수 언어가 서로 다른 관점과 통찰력을 가져다 주는 세계적 자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또한 세계 공용어가 개인적 삶의 향상과 국제협력의 귀중한 도구임을 역설한다.

영어가 오늘날 이렇게 세계어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그것이 적시에 적절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17세기, 18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 확장과 더불어 미국, 캐나다, 인도, 오세아니아, 서인도제도 등지로 영어가 확산되었고, 19세기에 영국이 산업혁명의 선도국가가 되면서 선진 기술 도입의 필요에서 각국이 영어를 배웠다. 이어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면서 경제적 의존국들의 영어 습득의 필요는 더욱 확대되었다. 세계 제 2차 대전 후 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여러 부족 언어로 분열된 신생국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필요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게 되었고, 20세기 후반에 미국이 주도한 전자혁명과 함께 영어는 세계인에게 일용할 양식과 같이 필수 불가결의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4억명,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구도 4억명에 달하고, 영어는 약 85% 정도의 국제기구에서 유일한 공용어이다. 아랍국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OPEC (석유수출국기구)의 유일한 공용어도 영어이고, 유럽이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대부분 국제기구의 단일 공용어 역시 영어이다. 세계의 대부분 학술지들이 영어로 출판되고 있고, 영어는 국제적 대중오락의 매체이며, 국제해운, 항공관제의 언어이기도 하다.

유럽의 대학들에서는 많은 강의가 영어로 행해지고 있고, 이제는 동양학자도 영어에 능통하지 않고는 세계적 수준을 따라가기 어렵게 되었다. 영어를 모르면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한한 학술, 기술, 문화, 사회적 정보의 대부분을 향유할 수 없는 오늘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지식의 빈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본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어의 왜곡을 보면 실수와 국제적 오해를 유발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본다.

언어의 강력한 정치적 함의 때문에 복수의 민족이 함께 거주하는 나라에서는 언어적 주도권을 둘러 싼 분쟁은 불가피하다. 미국에서는 수세기 동안 영어가 세계 각지에서 이민 온 인종들을 묶는 접착제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공용어로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국가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의 ‘영어 공용화’법 제정운동이 드러내 주는 고민스러운 미국 내의 언어상황, 예를들어, 영어가 다른 언어와 만날 때 생기는 변종 영어 형성의 문제점등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영어에 얽힌 몇 가지 흥미로운 사건과 일화들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주의깊게 정치색이 배제된 어조로, 국제사회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오락 생활에 참여하기 위해 영어를 구사해야 할 필요성과 이점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영어를 공용어 또는 제2 언어로 채택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임을 시사한다.

인류가 상호교류를 통해서 그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문화, 학술, 외교의 ‘세계 공용어’는 언제나 필요했다. 중세에서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는 라틴어가 그 역할을 했고, 아랍권에서는 아랍어가, 극동지역에서는 한자가 그 역할을 했다. 앞으로 영어만큼 일차 사용자가 많은 언어가 세계에 등장하기는 힘들 것이고, 일단 세계 공용어가 되어 전 세계인의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의 도구가 되면 미국이 패권을 상실한다 해도 쉽사리 다른 언어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유용하고 필요한 영어가 우리에게는 습득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모국어로 채택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할 뿐 아니라 우리세대에 시행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영어를 효과적으로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국가적인 계획과 실행이 있어야한다. 동시에 한국어의 타락, 훼손도 막아야 한다. 우리말을 바르게 알고 사용하는 것이 바른 외국어 습득의 기초이다.

영어가 우리에게 족쇄가 되지 않고 날개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한숨과 땀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노력이고, 그 경지에 이르기만 한다면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서지문 고려대 영문과 교수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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