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의 자로 잰 듯한 패스, 호나우드의 절묘한 발리 슛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뛰어난 육체적인 능력은 모두 정신이 일궈 낸 결과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능력은 수학자나 물리학자의 이념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에 비하면 논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일까?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이루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는 이원론적 사상, 즉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 정신을 우위에 두고 육체를 하위에 두는 사상이 깔려 있다. 우리는 언제인가부터 정신이야말로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라는 주장을 한치의 의심 없이 받아 들여왔다.
그러나 독일 의사 마틴 바인만이 엮은 이 책은 육체를 정신의 부속물로 보는 사고방식에 회의를 던진다. 오히려 ‘창조적 육신은 자신의 의지의 수단으로 정신을 창조했다’는 니체의 말을 빌려 데카르트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육체야말로 오늘날의 정신을 있게 한 원동력, 즉 영혼의 모태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손과 두뇌를 훌륭한 상호 작용을 이루는 관계로 묘사한다. 두뇌 없이 기능하는 손은 생각할 수 없으며 손의 작용 없이 두뇌가 오늘날의 행태로 발전되었다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신경 생리학적, 뇌의학적 관찰을 총동원 해 밝혀낸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헬렌 켈러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우물가로 갔다. 차가운 물줄기가 내 손을 타고 흘러 내리는 동안 선생님은 내 다른쪽 손에 ‘물’이라고 썼다. 바로 그 순간 번개같이 되살아난 정신이 내 몸을 타고 흘렀고 언어의 비밀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헬렌에게 손은 언어의 ‘발신자’이자 ‘수신자’였으며 외부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문이었다. 헬렌은 사물과 손바닥에 그려지는 기호와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빠른 속도로 언어를 배워 나갔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게 된 후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도구의 제작이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은 조직적 사고를 하게 됐고 다시 도구 제작 기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인간은 도구를 만든 손으로 벽화를 그렸고 그림문자를 창조했다. 저자는 손노동자(육체노동자)가 입노동자(정신노동자)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의 하나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