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시 일본인이지 싶은데, 속칭 비원인 창덕궁 후원을 두루 구경하고 나온 외국인의 소감 한마디.
“보여 준다던 정원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
한국 정원의 특색을 극명하게 말해 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백리를 푸르게 만든다’는 넓디 넓은 중국 정원이나, 인공 손길의 극치인 일본 정원과는 달리 우리 전통정원은 산천의 참한 한 구석을 골라 정자를 슬쩍 곁들인, 결과적으로 ‘꾸미지 않았는데 꾸며진(無作之作)’ 자연 순응성이 특징이다.
여기엔 두 요인이 작용했지 싶다. ‘조선팔도가 모두 금강산’이라 했던 저명 동양화가의 말대로 우리 산천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굳이 인공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었음이 하나고, ‘소박함으로 돌아감’(復歸於樸)을 미덕으로 삼았던 자못 도가(道家)적인 저변의 우리 심성이 또 하나 이유다.
생생한 현장 사진을 곁들이긴 했지만 이 책은 물리적 속성을 따지기 보다는 인문(人文)적 곧 인간 문화적 의미론으로 한국의 정원을 살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특히 1부의 4장 ‘정원 속의 상징세계’와 5장 ‘편액과 암각서’가 유서와 구별되는 특장(特長)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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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원의 유형 구별도 눈여겨 봄 직하다. 벼슬길에서 물러나 연고지 시골집에 마련한 ‘별서(別墅)정원’, 안목 있는 향반(鄕班)들이 조성한 ‘향원(鄕園)’, 권부(權府)에서 꾸민 ‘왕실정원’, 그리고 고려란 나라이름의 유래인 산고수려(山高水麗)에 값하는 곳에 일궈진 ‘산수·임천(林泉)정원’으로 정원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한자 자원(字源)에서 정(庭)은 집의 계단 앞을, 원(園)은 울타리가 있음을 뜻한다.그래서 정원(庭園)이란 사람 힘으로 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들여 경관을 조성한 끝에 집과 한 부분이 된 뜰이다. 한편 금수를 기를 수 있는 넓은 땅이 원(苑)이었으니, 울타리 안 뜰 그리고 연이은 넓은 산야를 함께 지칭할 때는 정원(庭苑)이라 적음이 옳다. 우리말은 같지만 이 책에서는 구별 없이 앞, 뒤 것을 두루 지칭한다. 그렇게 넓게도 정의할 수 있다면 장차의 탐구에서는 신라의 불적(佛蹟)으로 뒤덮인 경주 남산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책 부제가 말해주듯이 우리 전통정원은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길만한 여유계층의 개인적 산물이었다. 보통사람의 미적 갈증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일본이 미도(水戶)의 가이라쿠엔(皆樂園)이나 오카야마(岡山)의 고라쿠엔(後樂園) 등을 유명 정원으로 자랑하고 있음과 대조적이다. 전자는 이름 그대로 영주가 신민과 더불어 즐기자고 만든 것이고, 후자는 송(宋)대 명신이자 대문장인 범중엄(范仲淹)의 글귀에서 따온 이름. 곧 중신들의 처신은 백성들이 당하기 앞서 슬픔을 감내하고, 기쁨은 백성들이 누린 ‘연후에 즐기는’(後樂)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소개하는 경남 진양군 소재 무산십이봉 정원의 내력은 신선하다. 일제 때 한 부자가 기근에 시달리던 인근 주민들의 구휼사업으로 조성한 정원이란 점에서 음풍농월도 적덕(積德)을 한 연후에나 가당함을 깨우쳐주는 교훈의 현장이 되고 있다.
한국정원은 없는 듯이 존재한다. 이 책은 그 숨은 듯한 경승(景勝)을 찾는 길잡이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kim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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