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이주향/내 안의 ´붉은 악마´

  • 입력 2002년 6월 7일 18시 32분


공에 몰입했던 만큼 조마조마했다. 조마조마했던 만큼 골이 터진 순간들이 통쾌했다. 땀 범벅이 된 우리 선수들의 얼굴은 맑은 하늘의 별빛처럼 강렬했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오로지 ‘화두’만 있는 선승처럼 번뇌도 지우고 망상도 지우고 오로지 공의 흐름에 따라 경기와 하나가 된 치열한 선수들의 모습엔 가슴이 떨리기까지 했다. 나는 야수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 매혹되었고, 단순 명쾌한 축구라는 경기에 매혹되었고,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축구로 하나가 된 ‘붉은악마’에 매혹되었다. 악마처럼 집요하게, 악마처럼 열정적으로, 붉은색처럼 선명하게 축구에 몰입한 저 사람들에게.

▼편하겠다고 북한산 뚫는다면▼

바로 저 현상 속에 니체가 그렇게 살려내고 싶었던 ‘힘에의 의지’가 있었다. 이성의 질서라는 이름 하에 편리함과 계산에 길들여지고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근육질을 잃어버린 인간이 어디서 원초적인 생명력을 확인할 것인가. 사방으로 땀방울을 뿌리며 거친 호흡으로 달려가는 거기엔 분명 승부욕이 번뜩이지만 승부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

고종황제가 테니스를 치고 있는 서양인들에게 한마디했다고 하지 않는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왜 직접 테니스를 치는가. 어려운 일은 하인들 시키면 되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 발상, 그런데 우리가 웃을 자격이 있을까. 지금 우리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문명이라는 하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빨리’를 좋아하고 ‘쉽게’에 익숙해지고 ‘편리’에 길들여져 저 근본의 생명력, 내 안의 ‘붉은악마’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가장 거부하기 힘든 쾌감은 순수의 쾌감이다. 그 어떤 계산도 없이, 술수도 없이 순수하게 그 어떤 존재에 몰입하게 만드는 열정의 힘. 바로 그 쾌감이 쾌락주의자 에피큐로스의 쾌감, ‘쾌락이 최고의 선’이라고 했을 때의 쾌감이다. 그러니 그 쾌감은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말초적 쾌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쾌락주의자에게 그 쾌감은 ‘마음의 평정(ataraxia)’이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히말라야산맥을 오르는 오스트리아인 하인리히 하러에게 달라이 라마가 묻는다. 왜 산에 오르느냐고. 그가 대답한다. “산을 타는 건 절대적인 순수입니다. 마음이 맑아지죠. 혼란스러운 생각이 없어져요. 존재를 느끼게 되지요.”

무섭고도 험한 산길을 오르는 데는 고통이 있다. 그렇지만 쾌감이 있다. 거부하기 힘든 쾌감, 순수의 쾌감이 있다. 그런데 그 산길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면, 그 산길을 8차선 차로를 뚫어 산과 산을 연결한다면? 쉽게 산에 오를 수 있고 산길을 돌아갈 때보다 빨리 갈 수 있겠지만 원초적 존재인 거대한 산에 생기는 거대한 상처는 어이할까.

정부가 수도권 시민들의 허파 노릇을 하고 있는 북한산에 왕복 8차로나 되는 도로를 뚫는단다. 북한산은 국립공원이다.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던 것일까. 원초적 존재인 거대한 산을, 산과 함께 하는 자연생태계를 잘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국립공원을 지켜야할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산뿐만 아니라 노고산 불암산 수락산까지 꼬치 꿰듯이 뚫겠단다.

지금 북한산에선 수경스님이 벌써 넉달째 기도하고 있다. 천막으로 된 허술한 기도도량을 보고 있으면 왈칵, 뭔가가 올라온다. 그에 눈에는 그 열악함이 안보이고 그의 몸은 그 비루함이 불편하지 않은 모양이다. “불편이요? 이 거대한 산이 상처로 휘청거리는데 산승인 내가 무슨 투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갈 곳을 잃은 상처 입은 짐승입니다. 북한산이 다치면 내가 다치지요. 연인이 다치는데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까.”

▼천박한 ´문명의 마음´버리자▼

그 상황에서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정진하는 그는 치열해 보였다. 나는 거기서 고통조차 삶이 되는 ‘붉은악마’를 보았다. 선수와 공이 둘이 아니듯 북한산과 그는 둘이 아니었다.

북한산 문제는 북한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선지식 송담 스님의 말대로 모든 문제는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 돈만 되면, 편리한 생활만 보장되면 뭐든 괜찮다는 그 천박하고 계산적인 문명의 마음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산과 들은 몸살을 앓을 것이고 마침내 모든 국민은 30층이 넘는 아파트에서 교통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으며 자연과 담쌓고 문명의 바벨탑만 쌓아갈지 모르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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