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光州의 소리´

  • 입력 2002년 6월 7일 18시 37분


세상이 온통 월드컵축구 열기로 달아오르면서 ‘광주(光州)의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분명 있었지만 아주 빠르게 축구에 파묻혀버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그렇게 간단히 묻어버릴 게 아니다. 재생시켜서라도 다시 들어봐야 한다. ‘광주의 소리’에는 그럴 만한 시대적 의미가 있다.

▼광주에서 민주당 규탄대회라니▼

지난달 30일 광주 전남지역 47개 단체로 이루어진 광주 전남시민사회연대회의는 ‘노풍(盧風)은 광주 전남지역에 오지 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노풍을 누가 만들었는가?

노풍은 광주 전남지역 민주당 국회의원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온갖 비리에 진저리가 난 이 지역 시도민이 새로운 희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2.노풍은 구태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막대기만 꽂아도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당선되었다. 노풍이 똑같이 그 잘못된 전철을 밟을 것인가? 노풍의 이 지역 방문은 광주 전남 시도민의 자주적 선택권을 짓밟는 것이다.

3.민주당 강세인 이 지역에서도 많은 시도민의 희망은 자라야 한다.

이번 광주 전남지역 민주당 경선은 온갖 비리와 불법, 타락으로 얼룩졌다. 노풍이 그것을 뒤엎는다면 많은 시도민의 노풍에 대한 기대는 사라질 것이다.

2002년 3월 16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광주지역 경선은 ‘노무현(盧武鉉) 바람’의 진앙(塵央)이었다. 그랬던 광주가 두달반 만에 ‘노풍’을 거부한다? 성명서에 담긴 거부의 사정을 풀어보자.

민주당은 6·13지방선거 입후보자 등록 첫날인 5월 28일 이정일(李廷一) 광주시장후보의 공천을 전격 철회하고 박광태(朴光泰·광주 북구갑) 의원을 새 후보로 결정했다. 이 전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금품살포 시비에 휘말리면서 지역여론이 매우 나쁘다는 이유에서였다. 마땅한 인물은 없고 다음날까지 후보등록은 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3선으로 광주지역 의원 중 선수(選數)가 높은 박 의원이 ‘총대’를 멘 격이라지만 지역민심은 그렇지 않았다. 박 의원 또한 광주의 타락 경선과 혼란에 책임이 없지 않을 터에 누구 마음대로 당신들끼리 정하느냐는 것이다. ‘파출소 지났더니 경찰서 나온 격’이란 심한 말까지 터져나왔다는 것이 그 지역 한 인사의 말이다.

박 의원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경선과정에서 민주당이 ‘온갖 불법 타락의 정점’으로 비난받는 분위기에 범동교동계라는 자신의 이미지까지 나쁘게 작용하면서 시민단체의 일방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아무튼 문제의 핵심은 개인이 아니다. 민주당이다. 5월 23일과 27일 광주에서 ‘민주당 규탄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무능 부패한 민주당을 뛰어넘자’고 했다. 광주에서 민주당 규탄대회라니! 전에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광주지역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그동안에는 정말 DJ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될 정도였다. DJ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DJ는 더 이상 민주당 오너가 아니다. 아들들 비리로 민심도 돌아섰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기서는 어떻게 해도 괜찮겠지, ‘미워도 다시 한번’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한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딱한 노릇이다.”

어쨌든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마당에 텃밭으로 여겼던 호남지역 민심이 크게 흔들리는 기미가 역연해지자 민주당은 당황했고 그 타개책으로 내놓은 게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직접 지역을 방문해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자는 것이다.

‘광주의 소리’는 오지 말라고 한다. “광주시장 선거를 지키려다 대선을 망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노 후보는 예정대로 내일 광주를 방문할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노 후보가 과연 ‘광주의 소리’를 시대의 소리이자 역사의 소리로 인식하느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광주의 소리’를 어떻게 인식할지도 궁금하다. 다만 몇몇 하위당직자들의 반응처럼 호남표가 흔들리니 유리하다는 식의 ‘낮은 단계의 인식’은 아닐 것으로 믿고 싶다.

▼축구가 8강에 진출한들▼

이제 3김씨의 시대는 지났다. 특정지역 출신이라고 무능하고 부패해도 그 지역에서 국회의원 되고, 시장 되고, 군수 되고, 구청장 되는 시대는 함께 가야 마땅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싹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러자면 13일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가서 무능하고 부패한 인물들을 떨어뜨려야 한다. 축구가 8강에 진출한들 부패하고 무능한 인물들이 시장 되고, 군수 되고, 구청장 되어서야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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