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평축구가 처음 열린 것은 1929년 10월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이었다. 사흘 동안 매일 7000명의 관중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는데 당시로는 대단한 인원이었다. 결과는 평양이 2승1무. 이듬해 11월에는 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에서 열려 경성이 2승1패로 이겼다. 이후 2년간 중단됐다가 33년 4월 평양 기림리운동장에서 재개돼 두 도시가 나란히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일제는 경평전 배후에 민족 공감대가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해 경기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로 몸을 부딪치며 한 핏줄임을 확인하는 경기라 그만큼 걱정도 컸던 것이다.
▷경평축구는 광복 이듬해인 46년 3월 서울운동장 경기까지 모두 8회에 걸쳐 23경기가 치러졌다. 그후 44년간 남북을 서로 오가는 축구교류는 끊겼다. 해외에서 청소년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이 한차례씩 만났을 뿐이다. 그러다가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교환경기’가 열려 국민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회성에 그쳤다. 그동안 정부 대한축구협회 서울시 등이 나서서 여러 차례 경평축구를 부활시키려 애썼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꼬였기 때문이다.
▷유럽 코리아재단이 9월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 대표팀간 축구경기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합의하고도결정적 순간에 꼬일 수 있는 남북관계의 특성상 미리 성사 여부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이루어져 경평축구 부활의 실마리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의 월드컵 열기를 북한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마당이다. 일제하 민족정기를 일깨웠던 축구가 이제는 통일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물을 가르는 축구공의 힘이 분단 장벽인들 못 가르겠는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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