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프로야구]찬호 ‘위기의 남자’

  • 입력 2002년 6월 8일 23시 13분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다. 텍사스의 성난 홈 팬들은 그가 마운드를 내려오자 야유를 퍼부었다. 하필이면 이날은 애틀랜타의 유선방송인 TBS가 미국 전역에 생중계를 한 날.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그는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고 경기 후 인터뷰는 당연히 거절했다.

박찬호(29·텍사스 레인저스)가 미국프로야구 진출 9년 만에 최악의 부진을 보인 끝에 최단 이닝 강판의 수모를 당했다.

8일 텍사스 알링턴볼파크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인터리그 홈 경기. 박찬호는 1회 초 톱타자 라파엘 푸르칼을 삼진으로 잡으며 상큼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대런 브래그에게 볼넷을 내줘 계속된 2사 1루에서 치퍼 존스와 풀 카운트 실랑이 끝에 가운데 안타를 맞았고 앤드루 존스와 비니 카스티야의 적시타에 이은 매트 프랑코의 우월 2점 홈런까지 4타자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순식간에 5점을 내주고 말았다.

박찬호는 1-5로 추격한 2회 초에도 브래그에게 2타점 2루타를 맞는 등 한 타자만 잡은 채 4실점하고 물러났다. 박찬호의 평균자책은 10.94로 치솟았다.

텍사스는 이날 부상 후 복귀전을 치른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가 4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추격전을 벌였지만 초반 대량실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7-13으로 패배.

이날 박찬호의 직구는 150㎞까지 스피드건에 찍혔다. 프랑코에게 홈런을 맞은 공도 148㎞가 나왔다. 최고의 컨디션을 보였던 지난해 전반기에 비해 오히려 빠른 편이었다. 다만 볼넷은 1개밖에 없었지만 들쭉날쭉한 제구력과 약해진 볼 끝이 문제였다.

경기 후 이반 로드리게스는 “박찬호는 로케이션이 제대로 안돼 집중타를 허용했다. 볼이 홈플레이트 여기저기에 꽂혔다. 1회에 투구수가 너무 많았다”고 부진의 원인을 분석했다.

이에 박찬호는 올 들어 바꾼 투구폼 적응 실패와 허벅지 부상 외에 또 다른 심각한 부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좌타자 징크스도 문제다. 이날 애틀랜타는 교체 우익수인 브래그, 1루수 프랑코를 좌타자라는 이유 하나로 선발 타순에 올렸고 이들은 각각 2타점씩을 박찬호에게서 뽑아냈다.

박찬호의 다음 등판은 13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로 예정돼 있지만 이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에이스로서 제몫을 못하고 있는 박찬호로선 마이너리그 재활경기로 밀려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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