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대구 서포터스와 반미감정

  • 입력 2002년 6월 9일 22시 32분


미국 월드컵팀 서포터스의 단장 박순종(朴淳鍾·52)씨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박씨는 주한미군 제24지원사령부가 있는 대구 남구에 산다. 이 지역은 반미감정이 유달리 강한 곳이다. 6·25전쟁 무렵에 들어섰다는 미군부대가 도심 한가운데 버티고 있어서 부대 이전 요구를 비롯한 각종 민원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 미군 헬기장까지 있어서 작전용 헬기가 뜨고 내릴 때면 소음으로 인근 가옥들의 지붕이 날아갈 정도다.

이런 남구에 살면서 미군부대 이전 운동에도 앞장섰던 그가 미국팀을 돕는 서포터스가 됐다. 그것도 자청해서. 8일 전화로 이유를 물었더니 “손님은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미풍이고, 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포터스란 우리말로 치면 대반(對盤·혼인 때 손님들을 접대하는 사람)에 해당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처음 그가 미국팀 서포터스 아이디어를 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 하필이면 우리가 미국팀의 서포터스가 돼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박씨의 설득으로 대개는 그의 취지를 이해했다. 이렇게 모인 서포터스가 570여명. 이들 대부분은 ‘미군기지 반환 대구시민 10만명 서명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박씨는 이들과 함께 남구 거리 곳곳에 성조기를 내걸었다.

박씨의 얘기는 우리 시대의 반미감정에 대해 놀라우리만큼 단순하고 명료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 앞에선 어떤 이론적 설명도 번거롭게 느껴진다. “손님으로 잘 대접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한다”는 말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은 없어 보인다. 용미(用美)라는 말조차 진부하다.

반미감정이 갖는 역사적 민족적 의미를 모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반미감정-이 말이 거칠다면 비판적 감정-이 반드시 역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80년대의 질풍노도와 같은 반미감정의 물결이 없었다면 노태우(盧泰愚) 정권 이래의 자주화 외교 노력이 가능했을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또 어떻고. 가깝게는 미 보잉사가 차기 전투기 기종으로 결정된 F15K의 가격을 그나마(2억3900만달러)라도 깎아줬을까.

문제는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고 상대를 설복시키는 힘인데 이 점에서 박씨와 대구 서포터스의 결정은 탁월해 보인다. 더욱이 그 대상이 순수한 스포츠임에서랴.

박씨와 통화한 날 미 정부가 북한에 식량 10만t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발표를 들었다. 흥미로웠다. 왜 지금이지, 월드컵 한미전을 앞두고 반미감정의 분출이 우려된다니까 서둘러 내놓은 것은 아닐까. 억측일 터이다.

그러나 미국은 사안에 대한 선별적 접근에 능한 나라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이면서도 북한에 대한 최대의 식량지원국임을 항상 강조하는 것은 비근한 예다. 지난 2월 방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도라산역에서 이 말을 빼놓지 않았다. “미군 병사들이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피 흘리며 죽어갈 때도 미국은 그곳 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했다”는 말은 미 관리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적어도 수사(修辭)만이라도.

박씨와 대구 서포터스는 10일 한미전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팀을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그 다음엔…. “미군부대 이전운동에 다시 나서야지요. 웃으면서 우리 것을 찾아야지요.” 박씨의 말이다.

한미전 때 붉은 악마의 바다에 묻혀 대구 서포터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눈여겨봐주기 바란다. 거기에 우리의 시들지 않은 이성이 소박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므로.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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