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로 뒤지던 전반 40분 황선홍이 페널티킥을 얻어 동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키커는 이을용. 그러나 골문 왼쪽을 향해 왼발 인사이드킥을 했지만 방향을 알아차리고 몸을 날린 미국 골키퍼 브래드 프리덜에게 막혔다. 경기장은 일순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고개를 떨궜던 이을용은 다시 머리를 곧추세웠다. 0-1로 뒤지던 후반 33분. 미드필더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을 하기 위해 이을용은 문전을 보며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황선홍에게 첫 골을 어시스트할 때처럼 왼발 인사이드 킥으로 살짝 감아 찼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목표물을 향해 가는 유도탄처럼 안정환의 머리로 향했고 이어서 미국의 골 그물이 흔들렸다. 6만여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전반 페널티킥 실축으로 ‘역적’이 될 뻔했던 이을용은 안정환을 껴안으며 감격해했다. 이후 이을용의 플레이는 살아났고 44분에는 미드필더 왼쪽을 완전히 돌파한 후 골키퍼 앞까지 파고들며 득점 기회를 만들어 관중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했다. 최용수의 슛이 골문을 벗어나 역전에는 실패했지만 관중은 이을용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임신 9개월 부인도 남편 플레이따라 90분 희비▽
한편 인천 연수구 옥련동의 집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본 이을용의 부인 이숙씨(31)도 극명한 희비를 맛봤다.
이씨는 “남편이 페널티킥을 실패하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신 9개월의 만삭인 이씨는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후반전에 남편이 계속 경기에 나서고 동점골을 어시스트하자 기도하는 모습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대구〓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