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휩싸이면서 증권사들의 투자 보고서에서도 축구와 관련된 은유적인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월드컵과 증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국과 미국 대표팀은 10일 대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명승부전을 펼쳐 양국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에 비해 두 나라 증시는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월드컵을 지켜보는 이들이 열광하는 데에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이기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과 미국의 투자자들은 증시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엔론 사태 이후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이 의심받고 주주의 이익보다 스톡옵션 등을 통해 사익을 추구한 최고경영자(CEO)들의 행태가 드러나며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조세포탈과 분식회계 등의 의혹을 받고 있던 타이코인터내셔널 CEO의 사임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 주가가 27%나 떨어졌다.
제프 에버레트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달 “시장에 악한 기운이 있다”고 말했다. 김남태 삼성증권 뉴욕법인 과장은 “신뢰의 손상은 짧은 기간에 회복되기 힘들다”며 미국 증시가 조만간 상승세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비해 한국 기업들은 갈수록 투명해지고 있다는 평이다. 기업의 2·4분기 실적도 1·4분기 못지않게 좋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도 최근 증시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박은용 한화증권 과장은 “한국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가 내리는데 우리 증시만 오를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심은 증거로 풀리기 마련이다.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투명 경영을 하는 ‘정공법’을 계속한다면 시장의 관심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한국 증시의 재상승은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만큼이나 관심거리다.
신석호기자 경제부 kyl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