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종석/빗나간 카드빚 규제

  • 입력 2002년 6월 13일 22시 52분


경제학에서는 인간 행동을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 중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 경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 한 예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신용카드 빚과 이 때문에 유발됐다는 사회 문제들이다. 사람들이 정말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갚지도 못할 카드빚을 지고, 또 이를 갚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또 자기 능력을 넘는 충동구매나 과소비를 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 행동의 합리성이란 사람들이 항상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종 시행착오도 범하고 때로는 흥분해서 자기 발등을 찍는 일도 하지만, 반복적으로 일부러 자기에게 손해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용카드 남용문제도 대부분의 경우 카드 사용자들의 일시적인 충동이나 실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이들이 불합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의 행태를 바꾸는 것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의식과 행태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지게 하면 된다. 시장경제에서 자기책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실수한 사람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합리적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 사람을 벌 주자는 것이 아니라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것과 같은 논리다. 수입과 비용을 맞추지 못해 도산한 기업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 주어야 할 이유가 없듯이 수입과 지출을 맞추지 못한 소비자를 국가가 보호해 주어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들이 앞으로 수입과 지출을 잘 맞추도록 유도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정부는 신용카드를 남발한 카드회사들에 카드빚 누적과 사회 문제를 유발한 책임이 있다며 카드 발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용카드를 정직하고 유용하게 사용해온 다수의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이 문제는 규제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카드회사든 카드 사용자든 스스로 내린 결정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양측 모두 자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모든 문제를 규제로 해결하는 경제보다 기업과 소비자가 스스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제가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은 자명하다.

김종석 객원 논설위원 홍익대 교수·경제학 jskim@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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