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부패심판론´의 승리

  • 입력 2002년 6월 13일 23시 08분


예상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충격적이다. 민주당은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해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등 빅3에서 모두 패배하는 등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호남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민련 역시 텃밭인 충청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충남도지사를 제외하고 모두 패배해 존립이 위협받게 됐다.

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은 낮은 투표율을 원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이 같은 문제를 이유로 선거를 앞당겨 치르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 월드컵 기간 중 선거를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원칙대로 선거를 치르자고 버텨 이를 관철한 것이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월드컵에 따른 낮은 투표율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거를 앞당겨 월드컵 전에 치렀다면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홍삼’ 게이트 때문에 아마도 더 큰 패배를 당했을 것이다.

▼선거무관심 자초▼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의 그동안의 실정, 특히 부정부패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어떠한가를 보여준 선거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패배를 지역주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면 안 된다. 설사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승리를 약속한 바 있는 경남지역에서의 패배는 지역주의 탓이라고 봐주더라도 중부권에서도 참패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에 대해 노 후보와 민주당이 한나라당이야말로 부패의 원조로 부패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대응했으나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과 부패에 대한 발본적인 자기반성이 없이 한나라당의 전력을 물고 늘어져 피해 가려는 전략으로는 8월의 재·보궐선거와 연말 대선에서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선거는 보여줬다.

지자체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은 90년대 초반에 이어 다시 호남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90년대 초반의 지역적 고립의 경우 3당 통합이라는 여권의 반민주적인 정치공작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번 고립은 자신들이 실정과 부패를 통해 자초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특단의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우려되는 것은 선거 패배에 따른 위기 탈출을 위해 후보 교체, 자민련, 한국미래연합 등과의 연합 등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추진한 자민련과의 선거연합이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했듯이 이 같은 위기 탈출책이 문제의 해결책은 결코 아니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한나라당의 행보다. 이미 국회의 과반수 의석에서 한 석 모자라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당에다가 이번 선거에서 대승까지 거둠으로써 한나라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독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한 오만은 정치적 무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95년 지방선거에서 지역등권론을 내세워 정치적 복귀를 시도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통해 승리를 획득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승리 후 오만해져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만들어 정치에 복귀했다가 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에 패배한 바 있다. 또 96년 총선에서 승리해 오만해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했다가 총파업에 의해 몰락의 길로 들어선 바 있다.

▼승자도 패자도 겸손해야▼

사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의 대승을 안겨줬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국민이 한나라당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노무현 후보에 비해 이회창 후보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이 점에서 이번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대세론에 기초한 인위적인 세 불리기로 대선에 임하려고 하는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 울산시장 선거에서 앞서 가고 있던 민주노동당 후보를 떨어뜨려 영남권을 독식하기 위해 이회창 후보가 직접 집중 지원 유세에 나서고 “민주노동당을 찍는 것은 민주당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식의 유치한 지역주의전략을 편 것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 같은 전략은 부메랑이 될 수 있으며 설사 승리하더라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는 정권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승자, 패자 모두 겸허한 자세로 자기개혁을 통해 민심을 잡는 경쟁에 나서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교수·정치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