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3시반에 시작한 일본팀의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근무 중에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를 놓고 일본의 자치단체들이 양쪽으로 갈렸다. 고심 끝에 묵인한데가 있고, 금지한 곳이 있다. 금지한 곳은 주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곳은 허용했고, 그렇지 않은 곳은 불허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날 경기는 일본의 16강 진출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게임이어서 모든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 공무원도 예외일 수 없었다. 4일 벨기에와의 1차전은 오후 6시에, 러시아의 2차전은 오후 8시반에 시작해 고민이 없었다.
야마가타(山形)현 다카하시 가즈오(高橋和雄)지사는 1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근무시간에 TV를 보게 한 경우는 원폭위령제 이외는 없다”며 시청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시청을 하려면 휴가를 내고 집에서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현민상담실에는 찬반 양론의 전화가 쇄도했다. 당연하다는 반응과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주장이 많았다. 해외언론사에서도 취재신청이 들어왔다.
야마가타 뿐만이 아니다. 시즈오카(靜岡)현과 군마(群馬)현의 기리오(桐生)시는 13일 근무중에 TV를 보지 말라고 전직원에게 문서로 지시했다. 도쿄도(東京都)도 이날 “직무에 관계없이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은 ‘직무전념 의무’에 위반되므로 금지한다”는 통지를 각국의 인사담당과장들에게 E메일로 보내 부하직원들을 단속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결승전이 열리는 가나가와(神奈川), 준결승전이 열리는 사이타마(埼玉), 경기장이 있는 니가타(新潟), 미야기(宮城)현은 “직원들의 상식에 맡긴다”며 사실상 시청을 허용했다. 월드컵 경기장을 유치했으면서 자국의 월드컵 경기를 보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월드컵 경기장은 없지만 대표선수의 출신지도 시청을 허용했다.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들필더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선수의 고향 야마나시(山梨)현은 “어린애도 아닌데…”라며 자율에 맡겼고, 포워드 야나기사와 아쓰시(柳澤敦)선수의 고향인 도야마(富山)현 고스기마치(小杉町)는 “목소리만 높이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시청을 허용했다.
표면적으로 ‘공무원의 의무’를 들먹였지만 월드컵과 얼마나 관련이 있느냐에 따라 시청을 허용하거나 불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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