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외 52인 공동집필/712쪽 3만원 한길사
21세기를 이끌고 있는 첨단의 담론들을 분야별로 소개한 이 책은 기획자의 노력의 결실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등 각 분야의 가장 선도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를 주도하는 글을 소개하고 풍부한 사진·그림 자료에 전문용어·인물소개는 물론, 관심있는 독자들이 더 깊이 접근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읽을 만한 책과 가 볼만한 인터넷 사이트까지 첨가한 공력(功力)이 눈에 띈다. 제법 두께가 나가는 책이면서도 잡지를 보는 듯한 다양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초 1년을 예상하고 100개 분야에서 100명의 필자를 망라한다는 계획은 51명의 저자와 70개의 주제(8개 주제 29개 분야)로 줄었고 제작 기간도 반년을 더 초과했지만, ‘괜찮은 필자가 있다’고 하면 거리를 불문하고 발품을 팔아 보석같은 국내 필자들을 발굴한 기획자의 땀이 곳곳에 배어 있다. 다소 들쭉날쭉한 필자들간의 높낮이도 기획자의 이런 노력들이 기존 출판 관행상 흔치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눈감아 주고 싶다.
이 책은 무엇보다 지적 담론이 빠지기 쉬운 엘리트 주의를 털어내기 위해, 대중의 언어로 계몽적이지 않은 책, 가르치지 않은 책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장래 직업이나 전공과목 선택에 고민하는 고등학생 대학생은 물론, 선도적이고 실천적인 지적 발상들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도 편하게 다가 오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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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화두를 ‘문화’로 잡은 것도 유연해 보인다. ‘나에게로 다가오는 문화, 나로부터 만들어지는 문화’라는 제목이 붙은 1부에서는 영화,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 미디어, 광고, 현대 미술, 음악등 대중 문화의 첨단 흐름을 소개했다.
장호준은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누구나 자신의 캠코더로 자신의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에 이제 영화는 더 이상 ‘할리우드 키드’시대의 영화가 아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3D애니메이션과 온라인 만화, 게임에 관해 소개하는 글들은 인터넷 대중화로 급속하게 성장한 이들 시장의 산업적 가능성과 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2부 ‘새로운 기술, 새로운 관점으로 생활을 디자인한다’편에서는 날로 강력해지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어떻게 게임 책 영화등에 녹여 실용화 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3부와 4부는 자연과학 분야다. ‘극미의 세계로부터 우주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3부는 물질이나 기계를 분자 혹은 원자 크기로 만드는 신기술인 나노 테크놀로지에서부터 인공효소의 개발과 부작용없는 약물개발을 가능케 하고 있는 신화학, 미래 지능 로봇·ST(우주기술)등을 쉽고도 깊이있는 설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4부 ‘생명복제, 기술의 문제인가 윤리의 문제인가’ 편은 새로운 이론에 대한 소개가 위주인 이 책에서 유일하게 찬반 논쟁을 함께 실은 부분이다. 임종식이 4편의 글을 통해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가져 올 사회 윤리적 충격, 안락사 논쟁, 배아연구를 둘러싼 논란등 최근 생명공학을 둘러 싼 사회 윤리적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면 김훈기는 동물복제와 인간배아 복제 기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산업적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5부∼8부는 인문학 사회학 철학적 주제들이 망라돼 있다.
5부 ‘인간의 정신세계, 그 베일을 걷어내다’ 편에서는 ‘마음을 자연과학으로 해명한다’‘정신작용의 메카, 뇌의 기능을 밝힌다’는 글을 통해 신생 학문인 인지과학을 소개하고 있으며 ‘프로이드를 넘어서-정신분석의 어제와 오늘’, ‘혁명적 이단아 라캉-라캉의 정신분석’에서는 어렵게만 생각돼 온 정신분석학을 쉬운 언어로 소개하고 있다.
이밖에 6부에서는 환경, 지구온난화, 교육, 사회복지등 생활속에서의 변혁문제, 7부는 몸철학, 형이상학, 문화사, 미시사, 기호학, 종교학, 문학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담론들, 마지막, 8부는 세계화, 전자거래, 커뮤니케이션, 정보화사회등 디지털 시대의 아이템들이 법학과 경제학적 관점에서 어떤 빛과 그림자를 갖고 있는 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퍼즐 조각들의 집성이다. 책을 읽다보면,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은 즐거움과 다 꿰맞춘 뒤, 어느 순간, 우리 시대 학문의 청사진을 읽을 수 있는 지적 즐거움을 갖게 된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