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18일 밤. 부인과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서울시청 앞에 응원을 나온 김춘태씨(37·은행원·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다소 흥분한 듯 머리에 두른 붉은 두건을 벗어 얼굴의 땀을 닦았다.
김씨 가족이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거리로 나온 것은 안정환 선수를 제일 좋아한다는 큰딸 민혜양(8)이 “동네 언니들처럼 거리에 나가 대형 전광판을 보며 응원하고 싶다”며 며칠 전부터 졸랐기 때문.
경기가 시작돼 응원단의 함성이 터질 때마다 민혜양의 어깨가 들썩거렸고 둘째딸 민수양(3)은 혀 짧은 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연장전 끝에 한국의 8강 진출이 확정되자 김씨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부인 임효숙씨(36)는 “16강만 가도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8강에까지 오르는 걸 보니 꿈만 같다”며 손에 든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었다.민수양은 모처럼 집을 떠나 거리에 나오니 신이 났는지 연방 발을 굴러댔다.
민혜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정환 오빠가 마지막에 한 골을 넣어 기분이 너무 좋다”며 “안정환 오빠 파이팅”을 외쳤다.
경기가 끝난 뒤 대형 전광판에 선수들의 얼굴이 보일 때마다 김씨 가족은 열광적으로 함성을 질렀으며 응원단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직장이 있는 김씨는 이날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온 가족을 만나 시청 앞까지 걸어왔다. 부인 임씨는 “국민도 기쁘고 우리 가족도 기쁘고, 아이들에게는 다시 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