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뭉치면 된다" 큰 교훈

  • 입력 2002년 6월 19일 01시 13분


18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이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

스탠드에는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갖가지 내용의 휘장과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붉은 악마 응원단 앞에 내걸린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숨을 쉰다’.

월드컵 개막 직전 평가전이 한창일 때부터 무려 한달 이상 온 국민을 잠못 이루게 했던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대표선수들’이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룬 이날 경기장은 선수들과 꼭같이 호흡하는 국민의 함성으로 요동쳤다.

유사 이래 이번 월드컵만큼 온 국민이 한뜻 한몸으로 뭉쳤던 적이 있을까. 98년 국가부도위기를 무난히 극복한 뒤 재도약의 기로에 선 국민은 이날 경기를 통해 ‘우리도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듯 했다.

축구강국의 눈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선수들이 모인 팀으로 비쳤을 테지만 그 ‘보통 선수’들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이는 곧바로 전 국민을 붉은 악마로 만드는 밑거름으로 이어졌던 것. 붉은 악마 응원단 바로 앞에 내걸린 ‘그들과 함께 숨을 쉰다’는 플래카드는 국민의 이런 소망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태극전사들이 우리에게 일깨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의 8강 진출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번 대회 최대 이변. 그 파란을 이끈 원동력이 바로 신구세대의 절묘한 조화와 포지션별 경쟁 극대화.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 등 젊은피의 열정과 홍명보 황선홍 등 노장의 노련미를 조화시켜 기적을 일궈내며 지역간 세대간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우리는 축구로 하나가 된다’는 플래카드가 바로 국민의 이런 마음을 담아낸 것이 아닐까.

또 선수들간의 끊임없는 경쟁은 ‘고인물은 결국 썩고 만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라운드의 불꽃은 꺼졌고 날이 밝으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선제골을 허용한 뒤 불굴의 투지로 끝내 역전극을 일궈낸 이날의 감동을 평생 우리 가슴속에서 꺼뜨리지 않는다면 우리도 월드컵의 또 다른 승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영원히.’

대전〓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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