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다인종 도시여서 그런지 월드컵에 관심이 좀 더 많기는 하지만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축구보다는 농구 골프를 훨씬 더 즐긴다. 상당수가 이달초까지 미국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 중계에 빠져 살았다. 지난주 ‘US오픈 골프’에 식사가 포함된 수백달러짜리 초대권을 얻은 행운아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 “와, 타이거”를 외쳤다. 돈은 많이 벌지만 스트레스가 특히 심한 어떤 펀드매니저는 주말이면 찢어진 가죽점퍼를 걸치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로 강변도로를 내달리기도 한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이들의 머릿속이 맑아지지 않는 것은 뉴욕 주가 때문이다. 프로농구 LA레이커스나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는 건재하지만 GE IBM 등 뉴욕 대장주들의 주가는 볼품이 없다. 19일 나스닥지수는 1,496.83으로 올들어 최저치였고 ‘9·11 최저치’(9월21일 1,423)가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주가가 올라도 애널리스트들은 “내일은 모른다”는 표현을 빼놓지 않는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분석가인 손성원 웰스파고 은행 수석부행장은 ‘겹 채찍’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장신뢰와 기업실적이 모두 무너졌다는 의미다. 미니애폴리스에서 근무하면서 17일 뉴욕을 방문한 그는 “엔론 사태를 계기로 붕괴된 시장의 신뢰가 단기간에 극복될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기업실적도 상반기에 부진했다.
그는 “그러나 하반기 기업실적은 매우 나빴던 작년 하반기가 기준이 되므로 높은 신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 신뢰가 되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변호사 출신 기업개혁운동가 로버트 몽크스(68)의 해법은 간단하다. “만국의 투자자들이여, 단결하라!”(포천 6월24일자 참조)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최고경영자(CEO)의 권한이 너무 강하고 이사회는 걱정을 하지 않는 집단이다. 기업 민주주의는 신화일 뿐이며 최악의 경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투자자가 스스로 단결해 CEO를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제 살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