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까지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면서 속칭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남다른 감회에 잠긴다. 1980년대에는 수십명만 모이면 거리든 캠퍼스든 항상 최루탄과 투석전으로 얼룩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10여년후 거대한 전광판 아래서 축구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성을 지르는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후배들은 참 행복하구나.”
사람마다 입은 붉은 티셔츠도 30대 이상에게는 놀라움이다. 30대들은 초등학교 때 한반도지도를 그리면서 위쪽은 빨간색, 아래쪽은 파란색으로 그렸다.
기자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붉은색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수십만, 수백만명이 붉은 물결을 이루는 것을 보면 가슴이 뜨끔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붉은색은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고 인류사에서 오랫동안 정열과 사랑의 상징이었다.
거리의 붉은 물결을 보고 놀란 눈은 광화문 근처 식당에 들어서면서 더욱 휘둥그레진다. 식당의 젊은 종업원들이 태극기를 머리에 두른 것은 물론 허리에도 ‘아무렇게나’ 휘감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는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되는 줄로 우린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변신도 놀랍다. ‘한국’이라면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왠지 딱딱하고 공식적인 말이어서 솔직히 별로 친근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약간의 멜로디가 들어가면서 누구나 외치는 말이 됐다.
예전에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면서 ‘미국을 강하게 하는 건 국민의 생활과 문화 속에 녹아든 애국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한국에서도 바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 놀라운 건 누구도 이 모든 변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월드컵 신드롬’은 남녀노소의 가슴 한 구석에 있는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신연수기자 경제부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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