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명예롭게 지는 법

  • 입력 2002년 6월 20일 18시 54분


패배는 고통스럽다. 승자의 환호를 뒤로하고 떠나는 패자의 모습은 늘 쓸쓸하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 절대강자가 없는 법이라면 어떻게 지느냐도 이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축구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에 진 아일랜드의 매카시 감독은 “선수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고 했다.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졌기에 할 말이 없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보내는 신뢰만으로 패장의 변을 대신했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돋보인다. 프랑스의 문호 몽테뉴가 말한 ‘승리 이상의 패배’다.

▷이탈리아팀 트라파토니 감독은 대조적이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이탈리아가 이겼어야 하는 경기”라고 핏대를 세웠다. 모레노 주심을 비롯한 심판진이 아예 이탈리아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나왔다는 주장이다. 이탈리아 정부 관리와 언론들도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연일 끓고 있다고 한다.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을 ‘이탈리아에 대한 배신자’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흥분한 로마 시민들이 한국인에게 생수병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프로팀 페루자가 안정환을 받아줬으니 그 보답으로 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인가.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식으로 축구를 하는가. 정말 희한한 발상이다.

▷토티의 퇴장 등 이탈리아팀이 오심으로 내세운 세 가지 사례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대부분 공정한 판정이라고 분석한다. 예선 탈락의 비운을 맞은 프랑스 언론들마저 ‘이탈리아팀과 감독은 지고 나면 항상 판정에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우승을 호언하던 이탈리아가 받은 충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패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스포츠맨답지 못하다. 그들은 한국의 승리를 ‘사기’ ‘협잡’의 결과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8강 신화를 엮어낸 태극전사들과 이들을 한마음으로 성원한 우리 국민 모두에 대한 모독이다.

▷월드컵에서 세 차례나 우승한 이탈리아지만 막상 맞닥뜨려보니 ‘빗장수비’는 구멍투성이였다. 이탈리아가 이에 대한 인정과 철저한 반성 없이 심판 탓만 해서는 4년 뒤 독일 월드컵도 도모하기 어렵다. 초한지(楚漢志)에 나오는 ‘오강(烏江)의 최후’는 명예롭게 지는 법을 보여준다. 한군(漢軍)에 쫓겨 오강에 이른 항우(項羽)가 패배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깨끗하게 자결하여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이다. 전쟁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되새겨 볼 만한 대목이 아닌가.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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