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의 선전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요즘은 ‘후천성 월드컵 증후군’이라는 유머가 인기다. ‘신호등이 옐로카드 레드카드로 보이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에 인저리타임을 적용해 커피까지 마시고 들어온다’ 등이다. ‘누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할리우드액션이 아닌가 의심한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만다. 월드컵 때문에 모두가 즐겁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입을 열었다 하면 축구 얘기고 오다가다 만난 사람끼리도 붉은 셔츠 차림이면 금세 가까워지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걱정도 없지 않다.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낙으로 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동안 매일 오전엔 축구경기를 볼 기대에 들뜨고 오후는 TV 앞에서 악을 쓰는 재미로 보냈는데 이제 무얼 하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이상 증세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16강전이 끝나고 경기가 없던 이틀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정신이 멍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바람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가 하면 ‘오∼ 필승 코리아’ 외침이 귓가를 떠나지 않아 시험을 망쳤다는 학생도 있다. 바로 월드컵 금단증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엄청난 열광 뒤에 나타나는 정신공황 상태’라고 풀이한다. 한 달 가까이 몰두해온 경기가 갑자기 중단되자 몸 안의 흥분물질의 분비가 끊어지면서 무력증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다른 금단 증세와는 달리 월드컵 금단증상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대회가 끝난 뒤에도 초조해하지 말고 축구 얘기를 계속 화제 삼아 나누다 보면 증상을 차츰 줄여갈 수 있다고 한다.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하니 내친 김에 모두 조기축구팀에 가입하는 게 어떨까.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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