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는 1993년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뒤 국제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프랑스 월드컵과 이번 대회 지역예선에는 아예 출전조차 하지 않았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140위권으로 월드컵 본선 8강까지 올랐던 팀 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축구는 여전히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축구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 성인리그만 해도 1∼3부로 나뉘어 운영된다고 한다. 녹화중계이긴 하지만 월드컵도 방송되는데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도중에 중계가 중단된 일도 있었다.
▷이번 월드컵 중계는 어떨까. 전력난 때문에 하루 두 시간 정도밖에 볼 수 없지만 중요한 경기가 나오는 날은 TV가 있는 집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미국 일본 등 3개팀의 경기는 아예 중계에서 빠져있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하긴 그동안 한국이 이긴 경기를 북한에서 방영한 기억은 없다. 이번 월드컵 개막 직전 열린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이 이례적으로 방송되었다고는 하나 이는 우리가 진 경기였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은 한국 축구를 응원하고 있다. 최근 AFP통신이 평양발로 타전한 기사를 봐도 그렇다. 북한 당국이 감추려고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도, 한국이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도 입소문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북한 방송이 내보내는 대진표에는 으레 한 자리가 비어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그것이 한국임을 다 안다고 한다. 왜 가려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한국팀을 함께 응원하자고 하는 것이 더 모양이 좋을 뻔했다. 그래서 평양에서도 함께 길거리 응원이 펼쳐졌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운 4강진출이었을까.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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