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마르시아스 심/축구로 얻은 화합의 힘

  • 입력 2002년 6월 22일 19시 54분


나는 보았다. 태극전사들의 사투를. 그리고 나는 보았다. 우리의 승리를. 전후반 90분과 연장 전후반 30분의 분투 끝, 승부차기의 마지막 순간. 상대방 볼을 막아낸 이운재와 마지막 승리의 볼을 상대팀 골네트에 꽂아 넣는 홍명보의 모습을.

나는 또한 보았다. 경기장과 거리를 가득 메우고, TV 앞에 모여 열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모습을. 우리 선수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그들의 얼굴을. 이 모두를 보았으므로 나는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사실과 오늘 이 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까지.

우리는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막강 ‘무적함대’ 스페인팀을 침몰시킨 자랑스러운 축구팀을 가졌고, 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온몸으로 보여준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어제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거둔 우리팀의 승리를 ‘광주대첩’이라 명명하자.

가자! 이제는 ‘상암동대첩’을 넘어 ‘요코하마대첩’을 향해 전진이다! 우리는 못할 바 없다. 보지 않았는가! 우리의 신념과 패기, 집념과 투지를. 가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자.

평소 조국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사람도 이제는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자부심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입학시험 걱정, 취직 걱정, 실업 걱정, 생활고에 대한 걱정도 오늘만큼은 잠시 잊어버리자. 엊그제 TV를 통해 ‘아들 문제에 책임을 통절한다’는 대 국민 사과를 발표했던 대통령의 침울한 표정도 오늘만큼은 잊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축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축구라는 경기의 요체는 바로 파워와 스피드와 컨디션이라는 사실과, 그보다 더 중요한 힘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팀은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나 귀화선수 없이도 내로라하는 세계적 강팀들을 상대해 거칠게 몰아붙이며 승리를 쟁취해냈다. 조직력과 함께 정신적 투지 또한 얼마나 중요한 요인이 되는가도 알게 되었다. 이는 실로 한 국가의 생리와 같다. 국가라는 집단은 한두 사람에 대한 숭배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조직력과 정신력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한 축구라는 경기는 실로 원시와 야만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축구가 전세계 문명인들을 사로잡는 저간의 이유만큼이나 축구 경기에 대한 응원의 모습 또한 지극히 원색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응원 모습을 보았는가.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색 티셔츠의 물결은 집단적 광기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지극히 한국인의 정서에 호소하는 공격적 응원가와 타악기의 굉음,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에 뒤따라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우레같이 터져나오는 박수소리는 원시적 힘과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당사자들에게는 기쁨과 응원의 환호이겠으나 상대방 선수나 국민에게는 실로 공포로 여겨질 만했다.

이러한 응원의 광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단순한 진리에 목말라왔던가를 진단했다. 우리는 진정 어울려 열광할 ‘그 무엇’이 빈약했다. 지난 시절 ‘소득의 형평 분배’와 ‘민주화’를 위한 함성이 오늘 이렇게 축구에 대한 열광으로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적어도 우리에게 축구는 ‘소득의 형평 분배’에 따라가는 ‘소비의 형평 분배’라는 사회적 현상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설사 정치 경제적인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축구라는 ‘놀이문화’를 즐김에 있어서는 축구가 지닌 단순함과 격렬함으로 화합할 수 있고, 상반된 의견과 이해를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단순히 승부에 관한 집착에만 머무르지 않고, 경제 사회적 현상과 우리네 삶의 태도와 공동체적 가치에까지 교훈적 의미로 파급될 것이다. 이제 축구는 우리를 인식하는 하나의 기호이며 ‘화이부동’을 이뤄내는 문화적 형태이며, 그야말로 우리의 자존심을 넘어서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획득할 단합의 요체다.

이제 우리는 광주와 상암동을 넘어, 기어이 요코하마 하늘 높이 우리와 아시아인의 자존심을 증명해 한일월드컵의 진정한 취지를 완성해야 한다. 우리만이 아니라 공동개최국인 이웃나라 일본인과 전 아시아인을 위한 전진이다!

마르시아스 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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