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身濟家 못한 대통령▼
이런 민심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렇게 딱 잘라 장담하지 못한다. 대개의 부모들은 “지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으로 국민 앞에 섰다”는 대통령의 비감한 목소리에서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앞설 것이다. 40여년간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길을 걸었고 세계적 지도자의 명성까지 얻은 아버지가 철딱서니 없는 자식들을 둔 탓으로 “모두가 저의 부덕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다”라고 한 사과성명을 들으니 불효막심한 아들이 더 미워지는 것이다. 이 나라의 거목이 어느덧 작은 나무처럼 보이게 된 오늘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정신적 위상에 끼치는 손실도 적지 않은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통령이 자식 문제로 곤욕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더욱이 청와대의 권력 주변에는 언제나 정·경·관 유착의 끈질긴 유혹이 있어 현 정부도 이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정치 발전이 먼저라고 강조해왔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술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참담한 일’의 경험이 차기 정부에서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통치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 되어 권력형 비리 개혁의 길을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
작아 보이는 문제도 더욱 큰 인과의 연관 속에 일어나는 법이다. 이런 참담한 문제가 다만 자식 교육, 친인척 관리 소홀에서 생겼다고 한정시킨다면 거기서는 근시안적 처방밖에 나오지 못한다. 국민의 정부는 그 첫 관문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의 무거운 유산을 인계 받은 터였다. 그래서 야심 찬 개혁보다는 그동안 누적된 권력형 부패구조부터 척결하는 겸손한 청소부 정치를 자처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과거 개발독재 이래 어쩔 수 없이 중앙권력이 비대해지고 시민사회와 시장이 위축되어 권력에 연줄 가진 자만이 벼슬에도 오르고 벼락 치부도 하는 대단히 불공정한 정실자본주의의 부조리 구조가 남아 있었고 이는 건전한 시장경제를 위한 개혁의 과제였다. 이를 위한 처방으로 김 대통령은 취임 벽두에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 원칙을 공약하였다.
그러나 어느덧 현 정부는 제2의 건국 발상을 내걸고 기업의 빅딜을 강요할 정도의 ‘큰 정부’가 되고 정치·언론·의료 등의 개혁의 구호가 요란스러워졌다. 집권 정부의 개혁주의 불호령이 높아질수록 중앙권력은 더욱 비대해져서 어느덧 만사형통력을 가지게 된 권력의 줄잡기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이것이 해결사형 각종 ‘게이트’의 연원이다. 지난 50여년간 권력유착의 선수들만이 성공 득세하고 공정한 게임을 추구하는 정도(正道)파는 거의 모두 패배했다. 이런 정실주의 권력만능 풍토가 되면 권력에 줄대기 경쟁으로 부정부패의 해결사형 유혹에서 헤어나기 힘들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3홍(弘)’은 정실 풍토의 희생양일 수도 있다. 군부지배, 개발독재와 다름없이 ‘진보패권’도 권력비리 척결의 구조개혁에는 진보를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
▼독선 버리고 멋지게 마무리해야▼
수신제가라는 유교 정치이념은 오늘날에도 정치의 제1과로 살아 있다. 진보주의 개혁의 구호는 대중적 매력이 있으나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을 반개혁의 걸림돌로 몰아붙이는 이념적 독선에 빠진다. 자파자당의 개혁 선행 없이 온 국민을 개혁의 객체로 삼은 데서 ‘개혁 피곤증’이 온 것이다. 탈냉전 후에는 보혁의 패러다임이 반전되었다. 진보적 개혁주의가 더욱 큰 중앙 강권의 ‘큰 정부’가 되려는 것이 오히려 보수요, 시민사회와 시장의 활력에 길을 터주는 자유민권과 법의 지배가 진보다.
이번 기회가 현 정부의 자기 독선의 도그마를 타파하는 전화위복의 전기가 되어 좌우 편가르기를 넘어선 통이 큰 정치의 골든골로 멋진 마무리를 해주기 바란다. 남북관계 개선도 마찬가지다. 수신제가하고 치국한 기반 위에서 평천하하라는 것이 동아시아 정치철학의 가르침이다.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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