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가 내 나라,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다면 지금쯤 기사 작위를 받기 위해 여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는 6개월 전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나는 지난밤 광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동안 토요일 저녁 무렵 시작된 길거리 응원의 격정적인 파티가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유럽인인 히딩크 감독이 한국 문화에 유례 없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나는 한국의 기성세대가 공동체의식을 잃고 있는 젊은 세대를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이 젊은 세대들은 하나의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됐다. 다섯 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도 1승도 못 챙겼던 팀이 이번 대회에서 세계 톱 클래스의 강호를 세 팀이나 격침시켰다. 포르투갈은 낙담 속에 떠났고 이탈리아는 분통을 터뜨리며 집으로 갔고 스페인은 지금 좌절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3자로서 나는 이들 세 팀이 어느 정도 기만당했다고 느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포르투갈은 한국의 용광로 같은 애국심 속에 2명이 퇴장당했다. 이탈리아는 심판이 썩었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홈 어드밴티지에 밀렸거나 눈이 먼 심판들 때문에 2골이 무효처리됐다고 말한다.
나는 제3자이다. 실수도 보고 외국팀들의 불평도 들었다. 그리고 판단을 내린다. 이들 세 나라의 불평은 붉은 악마가 사기를 불어넣고 네덜란드인이 지도하는 한국팀이 이미 엄청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는 현실을 굳이 외면하려는 것이다.
나는 ‘믹스드 존’에서 그를 본다. 믹스드 존은 온갖 백그라운드와 피부 색깔, 주장을 가진 언론인들이 감독과 선수 주위에 몰려들어 갖가지 언어로 질문을 퍼붓는 ‘동물원’ 같은 곳이다.
히딩크 감독은 영어든 네덜란드어든 스페인어든 자신이 기적을 실현시킨 나라의 언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로 대답한다. 이제 그는 분명 한국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높다. 우리가 어디를 돌아보든 히딩크씨의 얼굴을 모델로 한 광고를 볼 수 있고 기업들은 인사 담당자들에게 히딩크 감독 같은 경영자를 찾으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
마법 같은 일이다. 지난해 11월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히딩크 감독의 인기는 볼품없었다. 당시 그는 비무장지대 근처에 새로 지어진 파주트레이닝센터를 막 얻었고 강하기 이를 데 없는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보기에 불가능한 것을 하려했다. 한국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럽팀처럼 바꾸려 했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내게 “당신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시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한국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올 1월 강한 체력 프로그램이 시작됐을 때, 그리고 주장 홍명보가 히딩크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고 있을 때, 정몽준씨와 한국의 축구협회가 감독을 잘못 뽑았다는 비난이 확산됐다. 일부러 고른 강팀과의 평가전 결과도 좋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배우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신뢰는 점점 더 엷어져 갔다.
이 부분이 중요한 점이다. 나는 잉글랜드 축구협회라면 그 순간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라의 축구협회는 무능하다는 비난 속에 대중의 불만을 견뎌내기는커녕 스타 선수들이 미국 해병대보다 강한 훈련을 감수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강철 같은 신념과 정몽준씨의 믿음은 강했다. 정몽준씨는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 준비와 팀워크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적어도 한 경기를 이긴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물론 그는 16강 진출을 꿈꿨다. 아울러 그는 한번도 말은 안 했지만 한국을 적어도 필리프 트루시에가 이끄는 일본만큼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숨겨진 계약 조건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모든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파이터’다.
히딩크 감독은 처음 정몽준씨로부터 서울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요구조건이 뭐냐고 물었다. 정몽준씨는 “월드컵 우승”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우승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정몽준씨는 멀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안될 이유가 있습니까?”
랍 휴스 잉글랜드 축구 칼럼리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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