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힘은 엄청나다. 일단 감정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군중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군중 속에서는 물리적인 현실보다 ‘심리적인 현실’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그럴수록 집단의 응집력은 커진다. 공동의 관심사와 목표를 지니고 ‘공동운명’을 맞고 있다고 생각할 때 집단 구성원의 상호의존도는 높아진다. 군중이 지니는 심리적 유사성은 집단의 응집력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심리적인 유사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내(內)집단’과 ‘외(外)집단’을 구분하는 성향이 있다. 배타적인 소집단을 말하는 ‘내집단’은 평소 지역이나 연령, 직업에 따라서 ‘우리’와 ‘남’을 구분하는 경향에서 나온다. ‘아군’과 ‘적군’은 이런 편가르기의 극단적인 경계다. 그런데 이 ‘내집단’과 ‘외집단’의 규모라는 게 매우 상대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변한다. 월드컵 같은 행사에서는 ‘내집단’이 한국인 모두를 의미하고 ‘외집단’은 그 밖의 모든 나라가 된다. 당연히 평소에 갖고 있던 ‘내집단’ 내의 갈등은 덜 두드러져 보인다.
▷군중 속에 파묻히면 ‘비개인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행동이라도 군중의 익명성 속에서는 할 수 있게 된다. 군중 속에서는 남의 평가도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유쾌한 군중이 돌변해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개인의 행동이라도 군중 속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그 책임을 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중의 힘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튀는 것을 경계하는 ‘집단적 최면과 광기’니 ‘억눌린 한’이니 하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모두가 서로를 ‘내집단’의 구성원으로 간주할 때는 군중의 힘이 폭력적인 충돌로 폭발할 위험은 적다. 여기엔 충돌할 ‘외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강미은 객원 논설위원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mkan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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