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일본인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 입력 2002년 6월 23일 19시 28분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한국이 세계 4강의 위업을 이뤘던 날, 나는 하마터면 서울행 기차를 놓칠 뻔했다. 수많은 인파가 시내를 마비시켰기 때문에 예상보다 늦게 광주역에 도착한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역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생긴 사연 때문이다.

어쩌면 사연이랄 것도 없다. 맛깔스런 전라도 음식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역전의 간이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켰는데 내 옆자리에서 두 명의 젊은이도 비빔밤을 먹고 있었다. 그때 마침 터키와 세네갈의 8강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우리는 혹은 수저를 손에 든 채, 혹은 입에 한가득 밥을 밀어넣은 채 경기를 즐겼다.

터키의 공격이 세네갈의 곡예로 연거푸 막힐 때마다 우리는 경탄과 아쉬움에 숟가락으로 밥상을 치고 입안의 내용물을 허공으로 토해내며 짧은 시간을 즐겼다. 그 친구들의 숟가락이 탁자를 튕기며 내 탁자로 왔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얼굴을 마주했고 그때서야 나는 그들이 일본인임을 알았다. 그들의 얼굴에 태극 문양과 ‘오 필승 코리아’가 페인팅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국인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반가웠고 고마웠다. 사실 경기장에서도 적지 않은 일본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코리아를 외치며 명승부를 즐겼다.

현대 연극의 선구자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으로 혁명을 할 수는 없지만 혁명의 연습은 가능하다’고 했다. 단어를 조금 바꾸자면 ‘축구로 한일친선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 연습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친선’이란 단어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이 단어 때문에 뼈아픈 과거사를 묻어버려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한일 두 나라의 젊은 세대가 서로를 응원하면서 아시아의 자긍심을 키웠다는 점이다.

우리 선수들이 준결승에서도 쾌거를 이루고 요코하마 경기장으로 가길 원한다. 그곳에서 수많은 일본인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동아시아의 흥겨운 잔치를 풍성하게 마무리하기를 나는 원한다. 나는 간이 식당에서 비빔밤을 같이 먹었던 일본 친구들을 잊지 않고 있다.

정윤수(스포츠칼럼니스트)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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