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PT만큼 뉴스 메이킹을 할 만한 것도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광고회사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경쟁에서 이기려고 한다. 승리만이 광고회사의 실력과 평판을 알릴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 보아야 할 대목은 바로 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라는 부분이다. 광고업의 속성상 광고인들 스스로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광고회사 입장에서 쓸 수 있는 ‘무슨 수’에는 대략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전략의 탁월함이나 독창적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보다 광고주 쪽에 일종의 리베이트를 제안하거나 연줄을 동원해 대행계약을 하는 수법이다. 둘째, 묵묵히 자기네 회사에서 생각하고 준비한 광고전략만 제시하면 될 것을 공연히 광고주 쪽에 ‘어떤 광고회사는 뭐가 문제다’라는 식으로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역정보를 흘리는 행태다. 셋째, 일단 경쟁 PT에 참여한 후 인력 부족으로 모두 외주를 내보낸 상태에서 마치 자기 회사에서 모두 준비한 것처럼 광고주를 속이는 수법이다. 넷째, 마치 산업 스파이처럼 다른 광고회사의 전략이나 준비 상황을 몰래 빼낸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PT 준비를 하고 PT 현장에서 경쟁사의 전략적 포인트를 언급하면서 은근슬쩍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광고주 입장에서도 반성해야 할 것들이 많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 PT를 하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광고회사 사장과의 학연 혈연 지연에 따라 선정하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공정성을 대외에 천명하기 위해 형식적인 PT를 하면 속사정을 모르고 경쟁에 참여하는 광고회사는 들러리를 서는 셈이다. 이는 광고주가 가장 삼가야 할 일이다.
또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무조건 많은 회사를 경쟁에 참여시키고 나서 결국 아무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발뺌을 하고, 심지어 한푼의 위로금(rejection fee)도 지불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다. 많은 PT 비용을 지출한 상태에서 모든 광고주를 늘 막연하게 잠재적 광고주로 간주하는 광고회사 입장에서는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야 한다.
광고회사나 광고주 모두에게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지적 자산과 아이디어를 생명으로 삼는 광고업의 근본을 뿌리째 흔드는 행태들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인 ‘이면계약’과 같은 것은 하루빨리 추방돼야만 한다.
광고회사와 광고주 모두의 진정한 페어플레이를 보고 싶다. 경쟁 PT가 끝나고 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기보다 승자는 정당한 승리로 기뻐하고, 패자는 진정으로 승복하고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그런 순간을 기대해본다.
한상필 한양대 교수·광고홍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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