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전사자 유해찾기

  • 입력 2002년 6월 24일 18시 49분


6·25 전사(戰史)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로 기록돼 있는 곳이 대구 인근 다부동(多富洞)이다. 우리 국군은 1950년 8월 다부동에 방어선을 치고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사투를 벌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0년 4월, 다부동 현장을 6·25 전사자 유해발굴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이 찾았다. 두 달간의 작업으로 이곳에서 발굴된 국군 유해는 무려 133구. 발굴단의 일원으로 현장을 찾았던 충북대 박선주 교수(형질인류학)는 “20∼30㎝ 두께로 쌓인 낙엽을 긁어내니 곧바로 유해가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은 정부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3000여명의 6·25 전사자를 발굴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지금까지 연인원 1만2000명이 투입돼 2000년 344구, 2001년 211구, 올 상반기까지 114구 등 모두 669구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처음에는 2003년까지로 활동시한을 정했으나 6월 초 호국보훈 관계장관회의에서 그 뒤에도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자국 군인의 유해는 시공을 초월해 반드시 찾아낸다는 것을 모토로 하는 미 육군 중앙신원확인소(CILHI)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국가의 기본 책무에 속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그동안 140여 발굴 지역을 답사한 육군본부 이용석 중령은 “사망 당시의 고통스러운 자세 그대로 발굴되는 유해를 볼 때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어느 해보다 뜨거운 6월이다. 물론 월드컵 ‘4강 신화’를 넘어 우승까지 노리는 한국축구 덕분이다.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외치는 ‘대∼한민국’ 함성에서 새삼 뜨거운 애국심을 느낀다는 이들도 많다. 더욱이 오늘은 독일과 결승 진출을 놓고 일전을 벌이는 날. 오늘 밤 다시 한번 애국심이 거리를 넘실대는 장면이 연출될 게 분명하다. 그 와중에서나마 6월25일 오늘은 잠깐만이라도 6·25전쟁 때 목숨 바쳐 애국한 넋들을 기리는 시간을 갖자.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 태극전사의 활약도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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