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평화안의 핵심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교체 요구다. 그동안 아라파트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왔던 부시 대통령이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아라파트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대(對) 이스라엘 테러를 종식시킬 수 없다는 부시 행정부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아라파트 수반이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배후에서는 테러를 은밀히 지원해 왔다고 보고 있다.
이번 평화안은 또 쉽사리 접점을 찾기 어려운 많은 전제조건을 담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자연히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향한 타임테이블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평화안을 발표하면서 1년6개월 안에 임시 국가를 창설하고, 3년 안에 독립 국가를 출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는 올해 말 실시될 선거에서 아라파트 수반이 실각하고 미국이 만족스러울 만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개혁이 이뤄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면서도 4월처럼 즉각 철군을 요구하지 않았다. 또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서도 추가 건설의 중단만을 요구했을 뿐 기존의 정착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아랍국가들에 대해서는 하마스, 헤즈볼라,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에 대한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 때문에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중동평화를 위한 팔레스타인의 독립보다 반(反) 테러 전선 구축에 중점을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미국 중동 평화안 | 팔레스타인 측 반응 및 입장 | 이스라엘 측 반응 및 입장 |
아라파트 수반 교체 | 민주적 절차 따라 당선. 교체 불가 | 이전부터 교체 요구 |
1년6개월 내 임시 국가, 3년 내 독립국가 출범 | 시기 빠를수록 좋아 | 테러 종식이 선결 과제 |
이스라엘군 요르단강 서안지역서 철수 | 모든 자치지역서 즉각 철수 | 안전 먼저 보장돼야 철수. 대대적인 대테러 군사작전 실시 |
국경선은 67년 이전 경계선 기준. 협상 거쳐 최종 확정 | 67년 이전 경계선이 국경 돼야 | 일부 정착촌 포함 철책 설치 |
▼이 “샤론 요구 반영” 희색▼
이스라엘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중동 평화안을 환영했다. 무엇보다도 아라파트와는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 부시 대통령의 평화안 발표 직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진정한 개혁을 실시하고 새 지도부가 들어설 때 외교적 수단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난 기신 정부 대변인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라파트 수반을 선택하는 것은 테러 정책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를 원한다면 이제 분명한 선택을 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또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설립에 비록 3년의 기한이 설정되긴 했지만 이는 테러의 종식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얼마든지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출범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팔 “이軍 철수 빠져” 불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퇴진 요구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은 25일 라말라 청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중동 평화안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도자 선출은 팔레스타인의 독자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퇴진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팔레스타인 측 일각에서는 아라파트 수반의 제거 움직임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력화 내지 이스라엘의 꼭두각시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보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측으로서는 평화안 내용도 탐탁지 않다. 새로운 지도자 선출과 자치정부의 개혁 등 임시국가 출범의 전제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점, 이스라엘군의 즉각 철군을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점 등이 모두 불만이다.
대부분의 아랍권 국가는 부시 대통령의 아라파트 수반에 대한 퇴진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아라파트 수반은 팔레스타인인이 뽑은 지도자로 다른 나라가 멋대로 가부(可否)를 말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