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카르스텐 슈퇴르(31·사진). 홍콩의 크레디스위스 투자은행에서 아시아 부채 담당 매니저로 일하며 한 달에 한번 정도 한국을 방문하는 그는 독일이 조국이지만 이날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다.
그는 또 부인이 스페인 사람이지만 한국이 스페인을 꺾은 것을 축하했다. 삭발과 함께 자신은 물론 친구와 고객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1만2000달러(약 1560만원)를 흔쾌히 내놓았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사실 스페인이 이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삭발한다는 약속까지 했지요. 하지만 한국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은 진정한 승자이고 결승까지 진출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팀입니다.”
슈퇴르씨는 이탈리아전을 보고 한국팀의 승리에 다소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스페인까지는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래서 한국이 스페인을 이기면 삭발하고 기부금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홍콩의 한 웹사이트에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전 승리로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오히려 독일보다 한국을 응원하게 됐다. 쉬운 팀을 상대하며 올라온 독일보다 강팀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올라온 한국에 마음이 더 간다는 그는 이제 진정한 한국 축구팬이 돼버렸다.
슈퇴르씨가 22일부터 24일까지 모은 1만2000달러는 아시아 지역에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옥스팜이란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25일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직접 찾아 이마에 태극기 문양 페인팅을 하고 한국을 응원한 그는 “한국이 4강까지 오른 것은 한국만의 자랑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자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