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바지에 이른 월드컵을 잘 마무리 한 다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국가적 관심사는 경제다. 월드컵으로 치솟은 국가이미지와 기업이미지를 경제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경제의 운영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불안요인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국제적인 경제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일이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중국 경제의 건실성에 대한 의문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남미와 미국의 경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美 경기침체 도미노 우려▼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통화가치를 미국 달러에 직결시킨 통화제도가 무너진 후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확산되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비교적 경제규모가 작은 우루과이와 에콰도르는 물론 브라질과 멕시코에서도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어 남미의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남미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브라질의 경우 정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55%, 이자부담이 GDP의 9%에 달하고 있는 데다 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이 브라질 정부 채무의 신인도를 더욱 낮추고 있어 브라질의 금융 사정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멕시코에서도 공공부문의 부실과 재정적자는 국가경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남미 제국의 경제위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미국 경제의 부진도 우리의 수출전망과 경제성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올해 1·4분기 성장은 연 5.6%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자율이 최근 40년 중 가장 낮은 수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미국 경제는 연 2∼3% 수준의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기부진은 1990년대의 과도한 장기호황, 주식과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가치의 급등, 정보기술(IT)산업의 과잉팽창, 9·11테러 이후 추가 테러 가능성 등에 원인이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4% 이상으로 확대되자 ‘강한 달러’ 정책을 통해 외국인이 투자한 재원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온 정책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음도 명백해졌다. 최근에는 엔론 사건을 계기로 기업회계의 투명성과 합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도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일시에 치유되기 어렵다. 그 결과 주가가 하락하고 소비자는 자신감을 상실했으며 기업의 실물투자는 줄어들고 9·11테러 이후 경제를 지탱해온 민간소비마저 위축되고 있다.
우리의 수출과 대외투자의 6%를 차지하고 있는 중남미의 경기부진과 금융위기는 우리의 수출과 대외투자를 위축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중남미 금융위기의 도미노가 아시아나 한국 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걱정되는 것은 미국의 금융불안과 경기회복 지연이다. 미국은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자본시장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경기의 부진과 자본시장의 불안정은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경쟁력 향상 위한 노력을▼
수출여건의 악화에 대한 대책으로는 경쟁력 향상이 으뜸이다. 월드컵의 광고효과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은 틀림없지만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우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더욱 높이고 기술개발에 힘써야 하며 노사관계는 소모적인 관계에서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금융구조조정과 기업부실은 신속하게 정리돼야 한다. 금리, 환율, 정부 재정 등에 관한 정부의 균형 있는 거시경제정책도 필요하다.
경제정책이 합리적으로 수립되고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권력형 부패 문제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하고 정치지도자들은 안정된 국가운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경제정책이 당리당략이나 부처이기주의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앞으로 있을 국회의원 재·보선과 대통령선거로 인해 정치가 경제정책을 왜곡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윤건영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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